지난주는 세계 통화 질서에 일대 격랑이 일 것을 예고하는 징조들이 국내외
에서 뚜렷이 나타난 한 주였다.

우선 로런스 서머스 미국 재무장관은 14일 런던경영대에서의 강연과 16일
베를린 G-20 재무장관회의에서 거듭 국제통화기금(IMF)의 기능축소를
역설했다.

IMF란 어떤 기구인가.

1944~71년의 브레튼우즈 체제, 즉 달러화 금태환을 근거로 한 달러중심
고정환율제가 붕괴된 후 미국을 대신해 세계 환율을 안정시키는 데 핵심적
역할을 해 온 국제기구가 아닌가.

이런 기구를 지난 92년 세계은행 재직 당시부터 미국 달러화를 세계 공용
통화로 삼을 것을 역설해 온 서머스 장관이 개혁해야 한다고 하는 것은
벌써부터 세계 통화질서의 새 틀 짜기가 시작됐음을 의미한다.

다음으로 일본의 움직임이 분주하다.

지난 11월 18일 나카가와 마사하루 대장성 금융국장은 현재의 100엔을
1엔으로 바꾸는 화폐개혁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런가 하면 지난 12월 3일에는 우에다 가즈오 일본은행 정책이사회 위원이
일본은행의 금리인상 가능성을 시사했다.

하야미 마사루 일본은행 총재도 현재의 제로금리는 비정상임을 거듭 지적
하고 있고 지난주에는 일본은행 실무진들이 금리 인상에 대해 활발히 논의
하고 있음이 확연히 관측됐다.

그만큼 일본 사정이 어려워졌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국내에서도 화폐개혁 주장이 제기됐다.

정부와 금융계 일각에서 화폐개혁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제기한 가운데
강봉균 재정경제부 장관이 그 필요성을 인정했고, 어윤대 국제금융센터
소장은 신문지면을 통해 이를 강력 주장했다.

이런 가운데 94년 이전에 발행됐던 옛 1만원권 지폐가 최근 시중에 대량
유통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무기명채권들도 암시장에서 30%까지 거액의
구전을 약속하며 필사적으로 변신을 모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마치 화폐개혁이 이제 곧 있을 것만 같은 기색이다.

심상치 않은 이런 국내외 움직임들은 두 가지 점에서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로 여겨진다.

첫째는 IMF의 가용 자금이 거의 바닥나 또 다른 국제금융위기 사태가 닥칠
경우 이를 막을 주체가 없다는 점이다.

94년 멕시코 사태 때나 97년 아시아 위기 때는 미국이 적극 나섰지만 더
이상 이를 기대하긴 어렵게 됐다.

미국이 내년 대통령 선거를 치른다는 점에서 특히 향후 1~2년간은 더더욱
기대난망이다.

서머스 미재무장관이 IMF의 한계를 명확히 하고 민간의 손실분담을 높이고자
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와 함께 미국 상원에는 현재 "국제통화안정법안"이 상정돼 있다.

이는 금융위기에 처한 국가가 위기 극복방안으로 달러라이제이션, 즉 달러화
를 공용화폐로 채택할 경우 그에 따른 미국 측의 조치사항, 시행절차, 양국의
책임 등을 정한 법안이다.

한마디로 이제 어디서든 외환위기가 발생하면 그것은 IMF 구제금융이 아니라
달러라이제이션을 통해 해결하겠다는 것이 미국 뜻임을 말해준다.

둘째는 일본 경제가 한계상황에 다다르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일본정부가 안고 있는 빚은 엄청나다.

1992년이래 9번이나 취해진 재정적자지출을 통한 경기부양조치로 정부 빚이
내년 GDP의 120%를 넘을 것이 확실시된다.

국민연금 채무도 현재가로 따져 GDP의 200~300%나 된다.

기업들의 빚도 마찬가지다.

퇴직금이나 기업연금 채무가 GDP의 10~20% 사이이고 일본 은행들이 안고
있는 부실채권도 그 정도 되는 것으로 추정된다.

지방자치단체들의 빚을 제하고 이것만 따져도 일본 정부나 기업의 부실은
GDP의 400%정도 된다.

이를 지금까지 일본은 국민들의 저축으로 충당해 왔다.

하지만 이것이 이제 한계에 이르고 있다.

화폐개혁론이 제기되는 것은 이런 부채 부담을 돈 가치를 희석시켜 줄이겠
다는 의도가 없지 않기 때문이다.

금리인상론이 제기되는 것은 국민들이 저축을 찾아가지 않도록 하기 위함
이다.

하지만 현재 일본 금융기관들은 제로 금리인 단기자금을 거액 장기채권에
투자해 놓은 상태여서 금리인상은 금융계에 상당한 충격을 줄 수 있다.

일부에서 얘기하는 태국형 금융위기 사태로까지 가지는 않는다 하더라도
엔화의 대 폭락이 예견된다.

국내에서 통화개혁론이 나오는 것이나 그 동안 숨어 있던 현금이 변신을
위해 몸부림치는 것은 이런 국제 조류와 무관치 않을 것만 같다.

겉으로 내세우는 명분과 속에 숨은 진의가 항상 같지만은 않다.

< 전문위원 shindw@ked.co.kr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12월 20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