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초 양말 고무신 등에서 사작된 한국 제품의 역사는 1백년만에 세계
최고 자리를 노리는 첨단 디지털 TV 분야까지 발전했다.

제품은 해방 이전에는 경공업이 주류였다.

60~80년대에는 중화학, 전자제품이 등장한다.

90년대엔 정보통신 등 첨단고부가제품이 선보이고 있다.

주요 제품별 변천사를 살펴본다.

<> 양말 =1906년 평양에 사는 김기호가 일본에서 직기4대를 구입해 공장을
차려 만든 것이 효시로 알려지고 있다.

20년대초엔 손창윤(삼공양말) 오경숙(대성직조사)이 평양의 양말공업계에서
성공을 거두었다.

또 최봉인은 일본에서 들여온 자동양말기계를 대구에 설치, 생산에 나서면서
경북 메리야스공업의 선구자가 됐다.

양말은 이러한 생산과 함께 전통적인 버선 등을 대체하면서 소비증가를
가져왔다.

광복 이후 수출입국의 전기를 마련한 봉제 섬유산업의 토대가 됐다.


<> 고무신 =고무로 된 신발이 상품으로 팔린 시기는 1915년께로 전해진다.

당시 일본에서 들여온 것들이 대부분이었다.

한국인에 의해 우리나라에서 고무신이 제품화된 시기는 1919년.

일본에서 고무신제조 및 고무배합 기술을 배워 평양에 공장을 세운 이병두에
의해서다.

이병두 고무신은 한국인 전래의 신발과 모양이 크게 다르지 않고 내구성이
뛰어나 지방의 농민들이 즐겨찾았다.

이병두의 고무신공장이 성공하자 전국각지에 공장이 세워지면서 보급이
늘었다.

20년부터 25년사이 한국인에 의해 건립된 고무신공장만도 20개나 됐다.


<> 가발 =60년대말 수출드라이브시대에서 가장 성공적인 수출상품이었다.

한때는 수출에서 최상위품목에 오르기도 했다.

당시 "머리카락 삽니다"라는 말을 외치며 골목길을 다니던 사람들이 흔하게
볼 수 있었다.


<> 자동차 =55년 김영삼이 만든 시발자동차가 첫 국산자동차다.

시발자동차는 그해 8월15일 창경원에서 열린 광복 10주년기념 산업전시회
에서 대상을 받았다.

시발자동차는 미군이 버리고 간 차체를 사용하고 드럼통을 두들겨 만들었다.

현대자동차는 76년 국내 첫 고유모델인 포니를 선보였다.


<> 전자 =우리나라 전자제품의 역사는 진공관식 라디오에서 비롯된다.

59년 금성사(현 LG전자)가 처음 생산하면서부터.

라디오는 61년 5.16직후 농어촌에 라디오 보내기 범국민운동이 벌어지며
크게 보급됐다.

61년 12월31일 우리나라에서도 흑백TV 방송전파가 발사됨으로써 TV수상기
시장이 형성됐다.

그로부터 5년뒤인 66년에 금성사가 처음 흑백TV 수상기를 내놓음으로써
국내에서 TV산업이 싹트기 시작했다.

당시에 금성사와 대한전선의 TV를 사기 위해 1백m가 넘는 줄이 만들어지고
선금을 내고 몇달뒤에 수상기를 인도받기도 했다.

컬러TV는 74년 크라운사가 OEM(주문자상표부착)방식으로 첫 생산해 수출한
것이 제품의 효시로 꼽힌다.

그러나 금성사 삼성전자 대한전선 등 가전사들이 연간 1백만대의 생산체제를
갖추었으나 80년12월까지 국내에 방송이 되지 않아 산업발전에 지장을
초래했다.

VTR는 일본이 기술이전을 꺼려 삼성과 LG가 독자 기술로 3년간 뼈를 깎는
연구끝에 80년 제품화를 하면서 역사가 시작됐다.

그러나 일본이 특허시비를 걸어 이를 해결하고서야 미국시장에 수출할 수
있게 된 아픔을 갖고 있다.

고선명(HD)디지털TV는 20세기말에 나온 최첨단 전자제품이다.

LG와 삼성전자가 세계 최초로 상용화에 성공하고 미국 유럽 등 시장으로
수출에 나섰다.

앞으로 우리나라를 대표할 기대주다.

< 윤진식 기자 jsyoon@ ked.co.kr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12월 20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