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시장의 냉엄한 현실과는 달리 국내 노사현장에서는 노사간의 소모전이
이어지고 있다.

반드시 상대편을 누르고야 말겠다는 배수진을 친 강경투쟁이 이어지고 있다.

노동계는 이미 거리로 뛰어나왔고 사용자 측도 물러서지 않겠다는 기세다.

노조전임자 임금문제에서 시작된 노동계의 "동투"는 지금의 분위기대로라면
해를 넘길 것으로 우려된다.

극적인 대타협이 이루어지지 않는 한 연내 타결은 어려울 것 같다.

만일 극한대립이 장기화된다면 그 결과는 불을 보듯 훤하다.

해를 넘기면 총선이 기다리고 있다.

사회가 혼란스러울수록 근로자들의 임금인상 요구는 거세지게 마련이다.

여기에다 노동계가 정치권과 이합집산을 이루면서 정치문제와 노사문제가
얽히면 사정은 더욱 복잡해진다.

총선 결과가 어떻게 나오든 그 다음엔 곧바로 임금협상 시즌으로 이어진다.

상당히 좋지 않은 일정을 두고 있는 셈이다.

기업 내부에서라도 노사 합심의 기반을 단단히 다지지 않으면 우리 경제가
또다시 나락으로 추락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올만도 하다.

한국경제신문사와 노동부가 함께 벌이는 "99년 노사화합대상"이 겨울투쟁이
한창인 올 연말에 유달리 빛나 보이는 것도 그래서다.

노사 협력에 이르는 길은 무엇일까.

업종과 규모가 천차만별인 만큼 회사마다 그 방법도 다양하다.

하지만 근본은 하나다.

근로자는 회사를 자기 집과 같이 아끼고 회사는 근로자들을 식구처럼 귀하게
여기는 것이다.

이번 시상식에서 대상을 타는 LG전선은 "투명 경영"에 승부를 걸고 있다.

회사는 노동조합의 요구에 따라 지난 97년부터 임금 및 단체교섭이 시작되기
전에 경영과 관련된 모든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지난해 2월에는 <>산업동향 <>경쟁업체 동향 <>사장 경영방침 <>투자실적
및 계획 <>부채현황 <>생산현황 등을 알려줬다.

심지어 대외비에 속할 수 있는 계열사 채무보증 내역까지 노조에 공개했다.

물론 노조도 필요한 내용에 대해서는 보안을 지켜 주었다.

노사가 이렇게 "속"까지 함께한 결과 경상이익이 지난해 3백55억원에서
올해는 1천3백억원(추정)으로 급증했다.

역시 대상 수상업체인 세림제지는 "강한 노조"를 육성해 회사의 발전을
도모한다는 이색 전략을 쓴 기업이다.

노조의 재정능력을 키워 주기 위해 구내 매점을 노조가 운영토록 하고
있으며 한달에 세 시간을 조합원 교육시간으로 정해 이를 근무시간으로
인정해 주고 있다.

이 회사에서는 경영자의 고유권한인 인사 문제도 협의사항이다.

종업원의 근무부서 배치와 승진 상벌사항 등을 사전에 노조와 협의한다.

그리고 이의가 있을 땐 가급적 최대한 반영한다.

부부사이 같은 이런 노사관계에 힘입어 올해는 지난해(72억4천7백만원)보다
74% 늘어난 1백25억원의 경상이익을 기록할 전망이다.

우수상 수상업체인 삼성에버랜드는 매출확대만큼 신경을 쓰는게 "근로자
만족"이다.

사람을 상대로 하는 서비스업의 특성을 감안, 내부 고객인 근로자도 감동
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삼성에버랜드는 그 일환으로 3백10억원을 투자해 국내 최초로 샤워실과
화장실을 갖춘 1인실 기숙사를 건립했다.

근무가 끝난 뒤에도 혼자 쉴 수 있도록 배려한 것이다.

현장사원(Cast)의 건강을 매일 점검해 당일 컨디션에 따라 근무지를
바꾸거나 대체휴일을 적용토록 하는 "Cast Care" 제도를 운영하고 있기도
하다.

우수상을 받은 세아ESAB는 "한가족주의"를 모토로 내걸고 있다.

주부사원을 위해 취미교실을 운영하는가 하면 사진 및 가훈전시회도 정기적
으로 개최한다.

회사에서 매년 2권 이상의 도서를 무상으로 주기도 하고 독후감을 공모해
포상하는 행사도 벌인다.

우수상을 탄 희성금속은 "정보 공유"에 힘쓰고 있다.

매월 월례조회를 할 때마다 영업실적과 품질 지표를 전사원에게 공개한다.

이와는 별도로 2~3개월마다 정기경영실적 보고회를 갖는다.

전사원에게 공통 ID를 부여, 회계자료와 경영현황을 사내 전산망을 통해
언제든지 알 수 있게 했다.

바로 노사가 서로 믿고 열심히 일하며 빼어난 성과를 거두었을 땐 근로자와
회사가 몫을 나누어 갖는 기업들이다.

배무기 중앙노동위원회 위원장은 이렇게 요약한다.

"반듯한 경영 없이 반듯한 노사관계도 없다. 문란한 경영은 노동조합의
과도한 요구와 무리한 투쟁만 낳을 뿐이다"

최고경영자가 근로자와 동고동락할 때 노사분규란 "남의 이야기"일 뿐이다.

"나 자신부터 현장노동자의 대변자로서 일하고 있다. 관리직 사원들이
사장을 싫어할 정도다. 엔지니어 출신으로 야간근무를 많이 해 봐서인지
누구보다도 현장 직원들의 애환을 잘 알고 있다. 현장 직원과 관리직간에
거부감이 적어야 일류회사가 될 수 있다"(이종영 세아ESAB 대표이사)

노사관계가 불안한 사업장은 시스템부터 바꿔야 한다.

첫 단계는 이미지 개혁.

"노사"란 말 대신 중립적인 단어를 쓰는 것도 실천해볼 만한 대안중의
하나다.

LG와 신무림제지는 각각 "노경"과 "근경"이라는 용어를 쓴다.

용어에서부터 서로를 중시한 결과 국내 최고 수준의 노사협력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다음에는 서로 신뢰할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해야 한다.

이벤트를 만들어 화합을 끌어내는 것이다.

민원실 개설, 징계기록 말소 등 대사면 조치, 한마음 대잔치 등이 구체적인
사례가 될 수 있다.

그리고 최고경영자의 경영철학이 뒷받침돼야 한다.

"열린 경영"과 "투명 경영"이 그 화두다.

종업원이 경영자라고 자부할 수 있어야 한다.

현장에 자주 가고, 직원을 자주 만나고, 의견을 수시로 수렴하는 "현장
경영"도 필수적이다.

최고경영자가 노조의 입장과 처지에 공감하고 조합 간부들에게 명분이
필요하다는 점을 인식하는 것도 중요하다.

성과배분제도를 도입, 생산성 향상에 대한 보상을 확대하고 종업원지주제
스톡옵션 등 주인의식을 고취하는 기법들도 동원돼야 한다.

"노사화합 없이는 기업의 미래도 없다"는 말은 더이상 헌장에 나오는
구호가 아니다.

바로 기업의 생사를 가름하는 결정적인 명제다.

품질과 가격 못지않게 안정된 노사관계야말로 가장 강력한 경쟁력이다.

< 최승욱.이건호 기자 swchoi@ked.co.kr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12월 16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