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한 기회에 주류판매점을 들를 일이 있었는데 점원으로부터 프랑스산
새 포도주를 구입하라는 강력한 권유를 받은 적이 있다.

상술인지 우리나라 사람들의 각별한 애정(?) 때문인지는 몰라도 정작
원산지에서는 비싸지 않은 포도주가 우리나라에서는 꽤 비싼 값이다.

그것도 특별히 부탁해야만 구할수 있는 상황이다.

그런데 이런 유행의 배경에는 술을 적당하게 마시면 건강에 좋다는, 특히
심장병예방에 좋다는 주장이 깔려 있다.

어떤 술이든 심지어 맥주 위스키 청주 소주도 약간의 음주는 심장병에 좋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포도주를 마시는 것이 좋고 이왕이면 백포도주보다는
적포도주가 낫다는 것이 일반적 주장이다.

동물성지방과 콜레스테롤이 많은 음식을 섭취하면 동맥경화증이 진행되고
심장관상동맥을 막히게 만든다.

콜레스테롤이 동맥 혈관벽에 달라 붙으려면 우선 콜레스테롤이 산화돼야
한다.

일단 콜레스테롤이 산화되면 혈관벽을 구성하고 있는 세포에서 더 잘
흡수된다고 믿어지고 있다.

그런데 비록 실험실 연구 결과이기는 하지만 적포도주에 들어 있는 폴리페놀
등 항산화물질은 콜레스테롤의 산화를 방지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그러나 백포도주는 적포도주를 거른 것이어서 이로운 항산화물질이 적게
들어 있기 때문에 콜스테롤의 산화방지 효과가 미약하다는 것이다.

적당량의 적포도주는 콜레스테롤의 산화를 85~95% 정도 막아주며, 백포도주
는 적포도주보다 무려 5배나 많은 양에서 비슷한 효과를 낸다는 것이다.

이 연구 결과는 소위 "프렌치 패러독스"(French Paradox)를 설명하는
증거로 받아들여진다.

프랑스 사람들은 지방질이 많은 음식을 섭취하기는 하지만 다른 유럽
사람들에 비해 심장 질환이 적은 편이다.

프랑스 사람들과 다른 유럽 사람들에게 다른 점이 있다면 프랑스 사람들이
적포도주를 훨씬 많이 마신다는 점이다.

하지만 실험실 연구 결과가 그대로 인체에서도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대부분의 항산화제 물질은 혈액내에서 너무 빨리 분해되기 때문에
콜레스테롤 산화방지에 효과를 미칠 수 없을지도 모른다.

게다가 술로 인한 악영향은 너무도 많다.

심장질환의 예방만 해도 식사습관조절 금연 운동 등 여러 가지 다른 방법이
많이 있다.

따라서 비싼 경제적 대가와 육체적 피곤을 감수하며 술을 즐길 이유는 없다.

비록 긍정적인 효과가 일부 있다고 해도 전문의들이 일반인들에게 건강을
위해 술을 즐겨 마시라고 권할 수는 없는 것이다.

< 성균관대 강북삼성병원 가정의학과 교수 hshinsmc@samsung.co.kr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12월 16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