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아자동차와 LG반도체.

모두 현대가 올해 인수한 회사다.

기아는 국제 경쟁입찰을 통해, LG반도체는 빅딜(대규모 사업교환)을 통해
넘겨받았다.

현대는 두 회사를 인수해 자동차와 반도체 사업에서 새로운 도약의 발판을
마련할 수 있게 됐다.

그러나 두 회사를 인수한 뒤 현대가 구조조정 과정에서 겪어야 했던
어려움은 예상을 뛰어넘는 것이었다.

"현대가 구조조정을 한다고 들었는데 기아자동차와 LG반도체를 인수해 부채
규모를 늘려놓은 것을 투자자들이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지난 11월초 전세계를 돌며 열린 현대의 투자설명회(IR) 행사에서 투자자들
은 강한 불만을 표시했다.

현대가 기아자동차나 LG반도체를 인수하면서 재무구조가 매우 나빠져
투자자들이 직접적인 피해를 입고 있다는 것.

사실 현대의 차입금 규모는 3월 기아자동차 인수직후 4조5천억원이나
늘었다.

LG반도체 인수후에도 4조원이 다시 증가했다.

다른 부문에서 살을 깎는 구조조정을 펼쳤지만 그룹의 전체 차입금 규모는
결과적으로 98년말 48조원에서 LG반도체를 인수한 지난 7월 53조원으로 다시
늘어난 것이다.

차입금 규모가 증가하면서 해외 투자자들 사이에는 현대를 "제2의 대우"로
보려는 시각이 생기기도 했다.

현대는 4.4분기 들어 무척이나 애를 먹어야 했다.

그러나 현대는 이 두 회사를 인수하면서 새로운 전기를 마련하게 된다.

현대전자는 LG반도체를 인수해 세계 최대의 D램 메이커로 올라서게 됐다.

현대자동차 역시 기아자동차를 인수해 단숨에 세계 10위의 벽을 넘어 8위권
으로 도약하게 됐다.

그룹의 구조를 자동차 전자 건설 중공업 금융.서비스 등 5대 핵심업종으로
재편하겠다던 현대의 기본 전략이 맞아떨어진 셈이다.

박세용 현대 구조조정위원장은 "기아자동차와 LG반도체를 인수한 것은
"선택과 집중"이라는 현대의 구조조정 원칙에 충실하기 위한 것일 뿐 결코
확장 경영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고 말했다.

현대가 비핵심 역량에 대한 과감한 구조조정에 나서 올해 자산규모
20조6천억원 규모(연말까지 추정실적)의 비핵심계열사를 정리한 것이 그
증거라는 설명이다.

79개나 되던 계열사수도 26개로 대폭 축소됐다.

현대는 이처럼 선택한 부문에 대해서는 과감한 투자에 나서 궁극적으로
"G-3(global top 3)"의 위상을 갖추겠다는 전략이다.

현대는 또 내년 상반기 자동차부문을 분리 독립시키는 것을 시작으로
나머지 4개 부문도 2003년까지 소그룹으로 분할시킨다는 계획이다.

현대가 기아자동차와 LG반도체를 인수한 것은 합병을 통한 시너지효과에
승부를 걸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LG반도체는 이미 현대전자와 합병돼 하나의 회사로 움직이고 있다.

기아자동차는 인수 초기부터 연구개발(R&D) 부문을 통합시켰고 최근에는
마케팅 상품기획 정비부품 자재 생산기술 등 5개 부문을 통합해 총괄본부
체제를 출범시켰다.

원가를 낮추고 규모의 경제를 실현해 경쟁력을 강화하는 방법이다.

이런 방법으로 현대자동차와 기아자동차는 향후 5년간 4조8천억원의
시너지효과를, LG반도체를 인수한 현대전자는 5년간 3조5천억원의 손익개선
효과를 기대하고 있다.

다행스럽게도 두 회사는 올해 흑자를 냈다.

절반의 성공은 이뤄낸 셈이다.

그러나 시너지효과를 내는데는 다소 시간이 걸린다.

그같은 기대가 현실로 나타날 것인지, 현대가 헤쳐나가야 할 과제다.

< 김정호 기자 jhkim@ked.co.kr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12월 15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