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는 한국의 빈곤문제에 각계의 관심이 모아졌던 한 주였다.

외환위기를 거치며 한국의 빈민인구가 두 배 이상으로 늘어났다는 분석이
있었다.

경기가 최근들어 급속히 회복하고 있지만 빈부격차는 갈수록 더 심화되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팽배했다.

정부는 앞으로 국정운영 중점을 균형발전에 맞추기로 했고 전국경제인연합회
는 구체적인 대책으로서 사회보험제도 개선방안을 제시했다.

대통령 비서실 "삶의 질 향상 기획단"도 공개토론회를 열어 본격적인 대책
마련에 시동을 걸었다.

빈곤의 심화는 사실 한국만이 아니라 모든 나라의 공통과제다.

세계 최대 경제대국으로 벌써 10년째 호경기를 누리고 있는 미국도 마찬가지
다.

오죽했으면 빌 클린턴 대통령은 지난 7월 전국 빈민지대를 순방하고 빈곤
퇴치대책들을 내놓았겠는가.

차기 대통령 선거 후보로 유력시되는 조시 부시도 지난 1일 "온정적
보수주의"를 표방하며 빈곤퇴치를 핵심으로 한 국정운영 비젼을 제시했다.

미국 언론은 빈곤퇴치대책이야말로 내년 대선에서 승부를 가를 수 있는
핵심 쟁점이 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영국에서도 토니 블레어 총리는 지난 3월 빈곤퇴치를 가장 중대한 국정과제
로 선포하고 9월에는 정책방안을 발표했다.

2주전 시애틀에서 있었던 시민단체들의 격렬한 세계화 반대 시위도 빈곤문제
가 범세계적 과제임을 말해준다.

빈곤심화에 대한 이 같은 범세계적 우려는 빈곤의 도미노 현상이 일어나면서
더욱 증폭되고 있다.

이제까지 주로 저소득계층의 문제였던 것이 이제 중산층의 문제로 번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미국의 관련 통계를 보면 확연하게 드러난다.

상대적 소득격차 확대 속에서도 절대임금만은 계속 상승세를 보였으나
1970년대들어 처음으로 저소득층 절대임금이 하락하더니 80년대에는 중산층의
절대임금마저 하락세로 반전됐다.

모종의 조치가 취해지지 않는 한 중산층은 급속히 붕괴되고 말 것이란
예측이 그래서 나오고 있다.

미국 MIT의 레스터 서로 교수는 이대로 갈 경우 새 천년은 과거 유럽의
중세시대와 같은 사회공동체 붕괴의 암흑시기가 될 것이라고 전망할 정도다.

그는 이 같은 자신의 예측에 대해 대책 없는 인구폭발 속에서 사회를 지탱해
주는 이데올로기가 붕괴되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마치 영토확장을 통한 시민의 후생증진이라는 목표를 달성한 후 로마제국이
공동체 존립명분을 잃고 내부분열로 패망의 길을 갔듯이 자본주의도 존립
명분을 상실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빈곤문제의 대가인 에드먼드 펠프스 미국 컬럼비아 대학교 교수도 다양한
실증자료와 과학적 분석기법을 동원해 중산층 붕괴를 예고하고 있다.

최근 "중산층이 살아야 나라가 산다"는 제목으로 국내에 번역.소개된
펠프스 교수의 저서에서 그는 기술발전과 정보화, 고금리, 세계화, 여성의
사회참여, 도시화 등 인간의 통제력을 벗어난 요인들이 동시다발적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렇다면 이제 관심은 인간이 할 수 있는 한계 내에서의 대책이다.

이에 대해 펠프스 교수의 진단은 자못 희망을 던져준다.

그간의 빈부격차 심화와 빈곤 도미노현상은 정책 잘못에 크게 기인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제대로 된 정책만 쓴다면 빈곤문제를 상당 폭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특히 흔히 얘기되는 경제성장의 가속화라든지 교육투자 증대 등의
대안은 성과가 없음을 실제 사례를 들어 설명한다.

아울러 흔히 얘기되는 공공고용 확대라든지 사회적 안전망 강화 그리고
정부지출 강조 등 케인즈경제학의 처방이 실제로 얼마나 역효과를 내고
있는지 지적한다.

그는 더 나아가 복지와 소득은 상호 배타적인 것으로서 복지주의야말로
중산층 붕괴의 결정적 원인이라고 역설한다.

이와 관련해 조지 부시 의 비전은 지금껏 여러 나라 여러 정치지도자들이
내놓은것 가운데 가장 펠프스 교수의 처방에 근접한, 합목적적이고도
현실적인 대책으로 여겨진다.

그는 의료보험은 MSA 즉 의료저축예금계좌 제도로 전환하고 국민연금은
단계적으로 민영화하며 빈민에 대한 지원은 최대한 근로활동과 일자리창출과
연계시킬 뜻임을 시사했다.

세금부담과 사회보험료 부담을 낮춰 기업활동과 근로의욕이 살아나게 한다는
것이다.

세계 경제의 조타수역할을 맡고있는 미국의 올바른 정책선택이 세계 빈곤
문제에 돌파구를 마련해 줄 것이라는 점에서 부시의 개혁에 기대를 걸게
된다.

< 전문위원 shindw@ked.co.kr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12월 13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