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계민 < 본사 논설위원 >

이번 정기국회 운영과정에서 나타난 두드러진 특징중의 하나는 법안심의에
있어서 이익단체들의 로비가 유난히 치열하다는 점을 지적하는 사람들이
많다.

15대의 마지막 국회이기 때문에 내년 4월의 총선을 의식해 로비가 잘 먹혀들
수 있는 여지가 커 이익단체들의 입장에서 보면 절호의 찬스라는 판단을 했을
법한 일이다.

실제로 법안심의 과정에서 표를 의식해 입법을 지연시키고 개악의 결과를
초래하는가 하면 당초의 취지가 퇴색하거나 왜곡되는 결과를 가져오는 사례들
도 속출하고 있다.

자신의 이익 극대화를 추구하는 것이 모두 악일 수는 없다.

그런데도 공개적이고 투명한 논의를 거쳐 합리적인 절차를 밟지않기 때문에,
달리 표현하면 불공정한 절차를 거치기 때문에 비난의 대상이 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합리적인 절차를 거치지 않고 밀실에서 흥정하거나 물리적인 힘으로
밀어붙인다면 소수의 이익은 대변할지 몰라도 대다수의 이익을 침해하는
결과를 가져오기 십상이다.

집단이기주의의 병폐를 걱정하는 가장 큰 이유중의 하나다.

물론 정책결정과정에 이익단체들이 로비를 벌이거나 의견을 제시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고 필요한 과정중의 하나다.

어찌보면 국가정책은 사회집단들간의 힘겨루기에 의해 서로 교섭하며
결탁하는 사회적 합의의 결과다.

자유경쟁시장에서 경제적 효율이 유도될 수 있듯이 여러 이해집단들의
경쟁에 의해 정책이 형성된다면 공공이익을 가장 잘 반영하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문제는 그같은 이익단체들의 경쟁이 공개적이고, 합리적으로 이뤄지는가
하는 점이다.

초미의 관심사가 되고 있는 노동관계법의 개정문제를 보자.

노조전임자 임금지급과 관련한 처벌조항의 삭제여부가 쟁점이다.

상식적인 판단으로 노동조합 일만을 전담하는 노조전임자의 임금을
대립관계에 있는 사용자측에 요구하는 것은 "무노동 무임금"이라는 유식한
용어를 동원하지 않더라도 도저히 이해하기 어렵다.

그러나 누가 옳고 그름을 떠나 자신들의 의사표시가 과연 적절했는지는
따져볼 필요가 있다.

반대의견을 갖고 있는 재계의 사무실을 점거하고 농성을 벌인 노조측의
의사표시 방법은 누가 보아도 잘못된 일이다.

설령 옳은 주장이라 하더라도 의사표시의 방법이 합리적이어야 함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어떤 이는 우리사회가 발전하기 위해서는 "떼법"을 없애는 것이 급선무라고
지적했다.

터무니없는 주장이라도 떼를 쓰면 통하는 잘못된 풍조를 하루빨리
불식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떼가 통하니까 더욱 집단이기주의가 극성을 부리고, 그러다 보니 질서를
지키고 원칙을 중시하는 사람들이 손해를 보는 결과를 초래한다는 주장이다.

변호사출신 의원들이 절대다수를 차지하는 국회 법사위원회가 변호사법
개정에 미온적인 태토를 보이고 있는 것이나 공기업 민영화의 핵심을 이루는
한전법 개정안을 정치적인 이유로 상임위에 상정조차 하지않고 있는 것은
국회위원 자신들의 이익을 대변하는 또다른 형태의 집단이기주의다.

대다수 국민들이 정치개혁을 요구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걸핏하면 국민의
대표라고 내세우는 국회의원들은 전혀 무감각이다.

오직 당리당략의 차원에서 상대방 흠집내기에만 열을 올리고 있다.

정치인들이 보여주는 집단이기주의의 극치가 아닌가 싶다.

사실 집단이기주의는 기득권 보호가 주내용을 이룰 수밖에 없어 사회의
변화와 발전을 저해하기 십상이다.

갖가지 개혁입법들이 표류하는 것도 그런 뜻에서 무척 우려할만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집단이기주의 문제는 특정사회계층에 국한되는 것은 아니다.

국회의원은 물론이고 경제주체의 일원인 정부에도 해당되는 일이다.

예컨대 총선을 앞두고 선심정책을 남발하는 것도 집단이기주의의 일종이다.

"경제문제는 경제논리로 풀어야 한다"는 말을 자주 듣는다.

경제의 효율을 극대화시키는 정책결정이 이뤄져야 한다는 뜻일 게다.

그러나 경제정책이라고 해서 순수한 경제논리만으로 대처하는 것이 최상의
선택은 아닐 수도 있다.

정치라는 변수도 엄연히 주어진 경제여건중의 하나다.

오히려 경제정책은 정치과정을 통해 추진된다.

정치에 의해 결정된 사회적 목표를 경제적 수단을 통해 달성하려는 것이
경제정책이라고 볼 때 정치적인 고려가 필요하다는 주장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소수의 기득권 보호가 핵심인 집단이기주의를 폭넓게 용인하는 것이
정치적인 이득을 얻는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침묵하는 다수를 외면해선 안된다.

특히 경제문제는 경제논리로 대처하는 것이 결과적으로 표를 가장 많이 얻고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내는 유효한 방법이다.

정치권은 물론이고 정부도 집단이기주의를 철저히 경계하는 것이 정치적
이득을 얻는 지름길이라는 사실을 잊지말아야 할 것이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12월 10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