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처정책에 대한 수술이 시급하다.

중병에 걸려 있기 때문이다.

9일 업계 학계 금융계에 따르면 벤처기업 5천개 육박과 코스닥활황의 주역
인 벤처정책이 이제는 "진정한 벤처"의 발전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는 지적
이다.

형식적으로 운영되는 벤처기업 확인제도의 부작용으로 "무늬만 벤처"인 기업
이 양산되고 있는게 가장 큰 문제라는 것.

중소기업청이 최근 4천여개 벤처기업에 대한 실태조사 결과 기술이 있고
사업자체도 유망한 하이테크형 벤처는 34%뿐인 것으로 밝혀졌다.

나머지 66%는 기술수준은 높지만 성장성이 낮은 기업 또는 별다른 기술도
없는 기업들이다.

벤처란 이름을 내걸고 코스닥 등록과 인터넷주식공모 등을 통해 막대한
자본이득을 챙기려는 사이비벤처들이 적잖은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이들은 심지어 일부 증권사와 결탁하는 등 자본시장의 건전성을 해치는
주범으로 떠오르고 있다.

최근 정부가 공모주청약에 대해 강력한 규제에 나선 것이나 벤처기업 지정
요건을 엄격히 적용하기 시작한 것은 이같은 현실인식에 따른 것이다.

그러나 이는 변죽만 울리는 꼴이라는 지적이 많다.

근본적인 수술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정부 부처별로 연계성 없이 벤처정책을 쏟아내는 비효율성을 개선해야
한다는 것이다.

중기청 과학기술부 산업자원부 정보통신부 지자체 등이 유행을 쫓듯이
벤처정책을 내놓은 탓이다.

창업과 입지 부문의 정책중복이 심각한 지경이다.

창업지원센터 신기술보육센터 창업보육센터 등 이름만 다를 뿐 비슷비슷한
사업이 한둘이 아니다.

창업교육이나 박람회 등 중복되는 이벤트행사도 줄을 잇고 있다.

주무부처인 중기청은 청이라는 한계에 걸려 종합적인 밑그림을 그리지
못하고 있다.

중기청이 내준 벤처기업 확인서는 정통부나 과기부로부터 정책자금을 받을
때 별 효용가치가 없다.

최근 건교부가 내놓은 광역권개발계획에도 국가 전체적으로 한국의 실리콘
밸리를 어떻게 육성할지에 대한 청사진은 빠져 있다.

외견상 화려해 보이는 벤처산업의 성장 뒤에 도사린 한국벤처의 그늘을
걷어내지 않고는 벤처가 21세기 성장엔진이 아닌 애물단지로 전락할 것이라는
우려가 높다.

벤처가 강자로 부상하는 새천년을 눈앞에 둔 지금이 벤처정책 수술에 나서야
할 때라는게 전문가들의 한결같은 지적이다.

< 오광진 기자 kjoh@ked.co.kr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12월 10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