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의원들이 내년 총선을 앞두고 이익단체들의 압력에 밀려 각종 법안의
심의를 지연시키는 등 "몸사리기" 현상이 극심해지고 있다.

의원들은 특히 이해 당사자들간 첨예한 대립을 야기한 법안을 상정하는 것
조차 꺼려해 국회의원의 법안심의권을 스스로 포기했다는 지적도 제기되고
있다.

7일 국회 건설교통위에서는 부동산중개업법 등 민감한 법안의 상정이
무더기로 보류됐다.

건교위는 당초 이날 전체회의를 열고 22개 법안을 상정할 예정이었으나
의원들이 총선을 앞두고 이해 관계가 엊갈린 법안의 심의를 꺼려 회의 시작
10분여만에 산회했다.

특히 향후 회의 일정조차 잡지 못해 상당수 법안들이 16대 국회로 미뤄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까지 제기됐다.

이날 회의가 아무 성과없이 산회됨에 따라 제주도개발특별법 등 여야간
이견이 없는 법안들의 심의도 모두 연기됐다.

이날 상정되지 못한 부동산 중개업법은 부동산 중개인의 영업구역을 확대
하는 것을 주요 내용으로 하고 있다.

이 법이 정부 원안대로 통과되면 공인중개사들의 조직적인 반발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또 택시 수입금 전액관리제를 세번 어길 경우 영업정지 명령을 할 수
있도록 한 여객자동차 운수사업법과 관련해서도 택시노조와 사업주간 치열한
논란을 벌여 왔다.

정치권은 지금 뜨거운 논쟁으로 달아오른 노조전임자 임금지급 문제에
대해서는 아예 "나 몰라라"하는 식이다.

노사가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지만 해법을 제시하기는 커녕 눈치만 살피고
있다.

선거를 앞두고 "노동계 표"와 "재계 돈줄" 사이에서 어느 한쪽의 손을 들어
줄 수는 없는 속사정 때문이다.

국민회의측은 "노사협의를 통해 자율적으로 결정할 문제"라는 원론적 입장만
밝히고 있고 한나라당도 공식회의에서 약속이라도 한 듯 입을 다물고 있다.

제조물의 결함으로 소비자에게 손해가 발생할 경우 제조업자에게 손해배상
책임을 묻는 결함제조물책임법(PL법)도 재경위에 상정됐으나 제조업체의
압력을 의식한 여야 의원들의 몸사리기로 회기내 처리가 불투명해졌다.

법사위는 소위원회에서 민법개정안을 확정했으나 동성동본 금혼제 폐지를
요구하는 여성계와 존치를 주장하는 유림 사이에서 눈치를 보느라 전체회의
에 상정을 계속 보류하고 있다.

전력산업 구조개편 촉진법도 한전민영화에 반대하는 노동계의 거센 반대로
산자위에 안건으로 상정조차 되지 못했다.

법조비리 근절을위한 변호사법 개정안도 변호사단체와 법조계 출신 의원
등에 의해 변호사 단체 복수설립 조항이 백지화됐다.

< 김남국 기자 nkkim@ked.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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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익단체 압력에 밀리는 법안 >

- 상정안된 법안
<> 전력산업 구조개편촉진법(한전 민영화 등)
<> 부동산 중개업법(부동산 중개인 업무영역 확대)
<> 여객 자동차 운수사업법(택시수익금 전액관리제 위반시 처벌강화)

- 상정이후 심의 지연된 법안
<> 결함제조물 책임법(제조물 결함시 제조업자가 배상)
<> 민법(동성동본 금혼제 폐지)
<> 변호사법(법조비리 근절대책)

- 심의과정에서 변질된 법안
<> 부가세법(간이과세 대상 확대)
<> 주세법(소주세율 80%에서 72%로 인하)
<> 약사법(약사의 혼합판매 허용)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12월 8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