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레이시아는 2년전 국제통화기금(IMF)에 구제금융을 신청하지 않았다.

아시아 금융위기에서 말레이시아 경제가 타격을 받지 않아서가 아니다.

국제외환시장이 동요하면서 말레이시아에 투자한 외국계 자금이 빠져
나가고 통화(링기트)가치는 급격히 떨어졌다.

시중에 자금이 원활하게 순환되지 않자 금리가 치솟았다.

주식시장도 곤두박질치고 결국 경제성장률(GDP)은 큰 폭의 마이너스성장으로
주저앉았다.

"아시아의 작은 용"이라는 칭호가 무색해졌다.

말레이시아는 이같은 위기에서 IMF의 긴급수혈 대신 "독자생존 프로그램"을
마련했다.

그리고 성공했다.

국제사회의 이단아였지만 말레이시아는 자립성공의 모델이 되고 있다.

<> 말레이시아 모델 =마하티르 총리도 처음에는 IMF의 "권고"를 받아들였다.

통화가치 방어를 위해 고금리와 통화긴축으로 위기를 타개해 보려 했다.

결과는 그러나 한국처럼 건실한 기업마저 무너지고 대규모 실업사태가 터진
것 뿐이었다.

마하티르 총리는 작년 9월 전격적으로 방향을 선회했다.

핫머니(국제투기자금)의 공격을 차단하기 위해 외국계자본의 해외과실송금을
제한하고 비거주자의 링기트화 차입을 금지하는 자본통제를 실시했다.

환율은 "1달러=3.8링기트"로 고정시켰다.

동시에 통화량 확대, 금리인하, 은행의 예대마진 규제, 은행대출 증대
유도 등 경기를 부양시킬 수 있는 모든 조치를 취했다.

지난 2월에는 외국계자본의 유출금지를 자본유출세 도입으로 대체하는 등
자본통제를 부분적으로 완화했지만 규제는 1년간 이어졌다.

<> 독자모델의 결과 =마하티르 총리가 독자노선을 결정하자 국제금융시장은
"말레이시아는 끝났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1년의 세월이 흐른 지난 10월 IMF가 "말레이시아의 위기극복
프로그램은 매우 효율적인 정책이었다"는 보고서를 발표, 평가는 일단락됐다.

다른 어떤 평가보다도 자신을 부정했던 말레이시아에 대해 IMF가 내린
효율적인 정책이었다는 평가가 무게를 갖기에 충분했다.

독자프로그램을 추진하는 동안 말레이시아가 국제금융시장에서 엄청난
차별대우를 받은 것도 아니다.

무디스나 S&P같은 신용평가기관들은 말레이시아의 국가신용등급을 "IMF
정책을 잘 따르는" 한국과 같은 수준으로 가져 갔다.

또 단기적으로 국제금융시장에서 말레이시아 채권은 한국물보다 높은
가산금리를 요구받았지만 이내 안정을 찾았다.

경제는 바로 프로그램의 효과를 보기 시작했다.

지난 2.4분기 GDP 성장률은 4.1%로 6분기 만에 플러스로 돌아서는 등 뚜렷한
회복세를 보였다.

지난해 한국보다도 저조한 마이너스 6.7%의 역성장을 기록했지만 올해는
4~5%의 플러스 성장이 예상되고 있다.

금리고삐가 잡히고 은행대출이 늘면서 기업들의 활동이 원활해지고 수출이
늘어났다.

증시도 올들어 꾸준히 오르고 있다.

말레이시아 독자프로그램의 의의는 "대안"이 될 수 있다는 점이다.

말레이시아의 선례가 있기에 앞으로 외환위기국은 IMF 방식 외에 다른
대안을 가질 수 있게 됐다.

< 박재림 기자 tree@ked.co.kr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12월 3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