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통을 거듭했던 주세법 개정안이 우여곡절끝에 지난달 29일 국회에서
의결됐다.

국회재경위는 주류업계의 요구와 여론을 감안, 소주.위스키 세율을 정부안인
80%에서 72%, 맥주세율을 1백20%에서 1백15%로 하향조정했다.

소비자부담 최소화를 무기로 여론몰이에 나섰던 주류업체들은 일단 떨떠름한
표정이지만 급격한 세율인상은 막았다며 내심 소기의 목적을 달성한 것으로
자평했다.

정부측은 2000년1월부터 증류주세율을 동일하게 맞추라는 세계무역기구(WTO)
의 결정을 이행하게돼 안도하고 있다.

그러나 연초 이후 난산을 지속해온 주세법 개정 과정을 되돌아보면 많은
아쉬움이 남는다.

정부는 세수 확보에만 관심을 보였고 업계는 세율을 낮추는데만 급급했다.

공청회나 국회 심의과정에서 한국 주류산업의 장래비전 또는 경쟁력에 대해
고심하거나 대안을 내놓는 모습은 거의 눈에 띄지 않았다.

세계 각국은 술산업을 부가가치가 높은 업종이라 보고 정부와 업계가 손잡고
엄청난 투자를 하고 있다.

역사와 전통이 오랜 선진국치고 좋은 술이 없는 나라는 없다.

프랑스 와인, 영국의 스카치 위스키 등 세계시장을 누비는 술들이 좋은
사례다.

하지만 국내업계는 다르다.

"한국을 대표하는 술"하면 생각나는게 소주밖에 없다.

그나마 선진국 술과 비교하면 부가가치가 현저히 낮다.

한 병에 몇만원씩을 호가하는 위스키, 와인과 몇백원에 불과한 소주는
수익성에서 비교가 안된다.

최근에는 소주를 선호하던 주당들의 입맛마저 변하고 있어 전망도 밝지
않다.

지난주 국내시장에서 시판된 프랑스산 99년 햇포도주 "보즐레 누보"의 경우
1주일만에 동이 날 만큼 인기를 끌었다.

올들어 위스키 소비는 지난해에 비해 40%에 가까운 급신장세를 보이고 있다.

내년 이후면 와인이나 위스키를 선호하는 풍조가 더욱 거세질 게 분명하다.

IMF 관리체제 이후 한국 소비자들은 변했다.

시장개방으로 입맛이 바뀌고 있고 국적과 관계없이 싸고 좋은 물건을
선호하는 추세가 역력해졌다.

주류업체들이 "국산 술"이라는 이유만으로 외국자본의 공세를 막아내기는
어려운 환경이 됐다.

주류업체들은 부가가치가 높은 좋은 술을 만들어 외국산과 당당히 경쟁할 수
있도록 알맹이 있는 연구개발작업을 서둘러야 한다.

주류산업을 경쟁력 있는 핵심 전략산업으로 키우기 위한 정부차원의
비전제시와 정책적 지원이 필요한 것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 최인한 유통부 기자 janus@ked.co.kr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12월 1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