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속에서 초겨울의
붉은 열매가 익고 있다.
서울 근교에서는 보지 못한
꽁지가 하얀 작은 새가
그것을 쪼아먹고 있다.
월동하는 인동 잎의 빛깔이
이루지 못한 인간의 꿈보다도
더욱 슬프다.

김춘수(1922~) 시집 "처용" 에서

-----------------------------------------------------------------------

이 시를 읽으면 먼저 머리 속에 초겨울의 하얀 눈 속에서 익고 있는 "붉은
열매"와 그것을 쪼아 먹고 있는 "꽁지가 하얀 새"가 떠오를 것이다.

그러나 시의 액센트는 그 하얗고 붉은, 선명한 빌깔의 대비에 있지 않다.

오히려 그것들 때문에 선명함을 잃었을 인동 잎이 시적 관심 대상이다.

"붉은 열매"와 "꽁지가 하얀 작은 새"는 "이루지 못한 인간의 꿈보다도
더욱 슬픈" 인동 잎의 빛깔을 강조하고 있다.

신경림 시인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11월 30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