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5월.

중견 건설업체를 운영하는 한정명 사장은 가볍고 기쁜 마음으로 퇴근길에
올랐다.

서울시에서 실시하는 컨벤션센터 공사 입찰에 참가해 사업권을 따냈기
때문이다.

이번 입찰에는 서류를 하나도 제출하지 않았다.

더군다나 담당 공무원들의 얼굴조차 본적이 없다.

모든 것이 전자입찰을 통해 이뤄졌기 때문이다.

정부가 2004년부터 공공시설 건설공사 사업자는 모두 사이버 입찰을 통해
선정키로 한 결과다.

한 사장은 허가에 필요한 서류를 온라인을 통해 정부에 보냈다.

그것도 입찰 가격과 설계도면 등 기본적인 계획만 제출했을 뿐이다.

얼마전까지만 해도 입찰에 참여하려면 수십가지 서류를 준비하는데 무척
이나 애를 먹어야 했다.

담당 공무원 접대도 빠지지 않는 "입찰 준비"의 하나였다.

하지만 이번엔 일이 무척 쉬웠다.

서울시의 공사 입찰 사이트에 들어가 정해진 방법에 따라 온라인상으로
모든 것을 마무리할 수 있었다.

사업자 선정과정에서도 공무원들이 개입할 여지가 없었다.

정부가 만들어 놓은 입찰 프로그램이 모든 업무를 스스로 처리해 최적의
공사자를 가려냈다.

입찰후 모든 과정이 입찰 당사자들에게 공개되니 부정이 개입할 소지가
없다.

한 사장은 전자정부의 힘을 실감할 수 있었다.

<> 행정에 참여하는 국민

상상이 아니다.

이런 일은 2005년이 아니라 어쩌면 내년이라도 현실로 다가올 수 있다.

세계 각국 정부가 이미 전자정부를 만들기 위한 각종 프로젝트를 내놓고
실행에 옮기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 정부도 전자정부 구현을 위해 정책을 마련해 놓고 있다.

사이버 정부의 개념은 미국에서 시작됐다.

클린턴 대통령은 취임직후 "국민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고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기 위해 정보기술을 적극 활용하겠다"며 전자정부 출범을 선언했다.

전자정부는 문서없는 행정조직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고객인 국민과 정보를 공유하고 국민을 위해 봉사하는데 정보기술을 사용
하는 정부란 뜻이다.

말하자면 정보화를 통해 행정개혁을 완료하고 행정의 효율을 극대화해
경쟁력을 갖춘다는 것이다.

작고 생산적인 정부를 지향하는 것은 물론이다.

고객지향적 정부의 의미도 담고 있다.

전자정부가 완성되면 각종 허가에 필요한 서류를 발급받기 위해 일일이
관청에 가야 하는 번거로움이 사라진다.

자격증도 온라인을 통해 취득한다.

시간과 공간의 제한없이 민원 서비스를 받을수 있다.

기업의 입장에서는 각종 허가와 신고 입찰 등의 과정이 모두 전자화돼
최적화된 기업환경을 갖출수 있게 된다.

모든 과정에 국민들이 직접 참여하는 까닭에 특수한 사안을 제외하곤 모든
것을 공개하는게 원칙이다.

행정은 투명해지고 공무원들의 자의적 판단이 개입할 여지가 사라진다.

<> 실행단계에 들어선 전자정부

전자정부를 향한 실험은 이미 몇몇 국가에서 진행되고 있다.

캐나다 뉴브런즈윅주 프레더릭턴시에는 ATM과 비슷한 "키오스크"라는
장치가 시내 곳곳에 설치돼 있다.

각종 공공정보와 행정서비스를 원스톱으로 받을 수 있는 장치다.

자동차등록 스티커를 발급받으려면 키오스크 화면의 지시에 따라 보험회사
이름과 보험증권 번호, 자동차의 총 주행거리 등을 입력하고 신용카드로
등록비를 내면 된다.

당장 프린터를 통해 차량등록 스티커와 함께 영수증이 나온다.

운전면허도 차량등록소에 설치된 키오스크 앞에서 문제를 풀어내면 합격
이란 글씨가 화면에 뜬다.

곧이어 합격증이 발급된다.

백화점 슈퍼마켓 도서관 등 시민들이 많이 모이는 공공장소에는 어김없이
키오스크가 설치돼 있다.

미국 실리콘밸리의 중심지인 팔로앨토시는 수도료 납부와 같은 사소한
민원부터 사업자 등록이나 건축허가 등 모든 행정업무를 인터넷을 통해
24시간 서비스하고 있다.

팰로앨토 시민들은 컴퓨터 앞에 앉아 각종 인.허가 서비스를 원스톱으로
받을 수 있다.

미국은 2000년 1월까지 모든 주정부의 행정업무 시스템을 팰로앨토시처럼
바꾼다는 계획이다.

이보다 더 큰 변화는 선진 7개국(G7)이 추진중인 정부 온라인(GOL)
프로젝트다.

7개 회원국 정부간에 디지털 네트워크를 구축해 시간과 공간의 제약없이
정보를 공유하고 인터넷을 통해 상품 및 서비스의 자유왕래를 실현하자는
구상이다.

하나의 사이버 정부아래 거대한 경제권을 형성하자는 것이다.

이 프로젝트가 완성되면 미국에 지사를 설립하려는 독일 기업이 미국
주정부를 방문하지 않고도 인터넷을 통해 모든 절차를 끝낼 수 있다.

<> 원스톱에서 셀프 서비스까지

각국은 전자정부의 초기 단계로 원스톱서비스와 셀프서비스 등의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일본은 원스톱 서비스를 2단계로 추진하고 있다.

1단계에서는 행정절차의 안내, 각종 양식의 온라인 제공등 현재의 기술과
제도만으로도 충분히 가능한 원스톱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것이다.

2단계에서는 민원절차를 모두 온라인으로 동시에 처리하는 고도화된 원스톱
서비스를 실현하는 것이다.

자잘한 교통범칙금을 내러 이곳 저곳을 다니며 한 나절을 허비해야 하는
지금과는 달리 컴퓨터 "클릭" 몇번으로 모든 것을 정리할 수 있는 시대가
온다는 얘기다.

스웨덴은 새로운 서비스의 형태로 셀프서비스 개념을 도입했다.

대표적인 서비스가 "전자 직업은행".

인터넷 상에 정부가 관장하는 직업은행을 설치하고 구직자와 구인자가 이를
직접 활용토록 하는 것이다.

정부는 "멍석"만 깔아놓고 사용자들이 편리하게 사용할 수 있도록 보조
역할만 한다.

이 시스템에는 벌써 하루 평균 34만명이 접속하고 있다.

< 김용준 기자 junyk@ked.co.kr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11월 30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