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경제관료들은 일을 안하는 것처럼 비춰지면 좀이 쑤시는 것 같다.

일이 없으면 긁어 부스럼을 만들어서라도 일하는 흉내를 내야만 직성이
풀리는 모양이다.

최근 금리문제를 둘러싸고 빚어지는 고위 경제관료들의 행태를 보면 이런
생각을 지울 수 없다.

강봉균 재정경제부장관은 지난 21일 KBS 일요진단에 출연해 물가불안이
현재화되면 그 시점에서 물가안정책을 펴겠다고 밝혔다.

지금은 물가가 불안하지 않다는 단서를 붙이기는 했지만 강 장관의 발언은
시장에서 정부가 내년 통화정책을 긴축으로 전환할 방침임을 시사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시장금리가 뜀박질하는 건 당연했다.

여기까지는 그래도 괜찮았다.

문제는 지난 22일 복잡해졌다.

금리급등으로 금융시장이 불안해지자 금융정책협의회에 참석했던 이용근
금융감독위원회 부위원장은 "재경부 및 한국은행과 회사채수익률을 연 8~9%로
유지하자는 데 합의했다"고 긴급 진화에 나섰다.

그러나 금융정책협의회에 참석했던 심훈 한국은행 부총재는 같은 시각
"금리정책은 전적으로 금융통화위원회의 결정사항"이라고 밝혔다.

두 사람의 말이 달라 시장참가자들은 혼란에 빠질수밖에 없었다.

지난 23일에도 상황은 비슷했다.

이근경 재경부차관보는 금리상승 요인이 없어 보인다고 밝혔다.

그러나 재경부 외신대변인은 외신기자들에게 금리정책은 금통위에 달려
있다고 해명했다는 게 로이터통신의 보도다.

재경부와 한은에서 서로 다른 뉘앙스의 얘기가 흘러나온 것이다.

금융감독위원회도 마찬가지다.

최근 금리인상을 촉발시킨 장본인은 바로 금감위다.

환매사태가 진정됐다고 판단한 금감위는 지난 16일 은행 보험사 투신사
관계자들을 모아놓고 금융기관에 대한 단계적 환매허용지침을 내렸다.

다음날인 17일부터 금리가 뛰어 오르자 "우리는 그런적 없다"며 특유의
"오리발"을 들고 나왔다.

현 상황에서 금리정책은 아주 중요한 정책변수다.

금리를 올려야 한다는 주장도 있을 수 있고 아직은 시기상조라는 목소리도
나올 수 있다.

그러나 적어도 정책당국자들의 입에서는 일관된 얘기가 나와야 한다.

그래야 시장이 신뢰를 한다.

정치인들이 여론탐색을 위해 이런저런 화두를 던져보듯 정부정책을 시장의
실험을 통해 결정하려 해서는 곤란하다.

"최근 금리급등은 수급악화보다는 정부정책에 대한 불신감에서 기인했다"

한 시장참가자의 말이다.

< 하영춘 증권부 기자 hayoung@ ked.co.kr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11월 25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