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리티지 재단은 미국 보수세력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워싱턴의 중요한
싱크탱크다.

이 재단은 경제이념적으로 작은 정부, 즉 자유로운 시장경제를 추구하고
있다.

미국 국내 정책은 물론 대외정책도 시장경제원리에 입각해 추진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시장경제이론의 신봉자이자 미국 보수세력을 대표하는 이론가인 에드윈 J
풀너 이사장은 레이건 부시 등 공화당 정권이 집권하던때 그의 생각이 바로
정책에 반영되곤 했다.

김대중 대통령 등 한국과도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지한파인 그의
사무실을 찾았다.

< 워싱턴=양봉진 특파원 bjnyang@aol.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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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리보고서가 몇 차례의 연기 끝에 최근 모습을 드러냈다.

클린턴 행정부는 신속히 북한에 대한 경제제재조치를 해제했다.

그러나 의회에서는 페리보고서에 대해 반대하는 분위기도 적지 않다.

"북한으로부터 아무런 긍정적 조치를 받아내지 못한채 일방적으로 제재를
해제한 것은 놀라운 일이다.

미사일을 발사하지 않겠다는 북한의 의지표명이 페리의 양보를 이끌어
냈으나 나는 여기에 동의할 수 없다.

북한이 핵기술을 갖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보상을 받고 있기 때문에 인도와
파키스탄이 핵능력을 가지려고 애쓰고 있는 것이다.

북한과의 협상은 공개적으로 이뤄져야 한다.

또한 동맹국인 한국 일본과의 합의하에 협상이 진행돼야 한다는 점도
강조돼야 한다"

-이와 관련, 의회의 후속조치들이 예상되는데.

"의회가 가까운 장래에 북한과 관련된 어떠한 진전된 조치를 취할지는 아직
잘 알 수 없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북한문제는 미 의회가 관심을 가지고 있는 주요 이슈중
의 하나라는 점이다.

하원은 과거와는 달리 별도로 북한관련 태스크포스팀을 만들어 운영하고
있다.

의회가 앞으로 미국의 대북정책에 깊이 간여할 것이라는 얘기다.

하지만 워싱턴의 외교정책은 아직도 행정부 혼자서 독자노선을 걷고 있는
느낌이다.

의회가 밀어주지 않는 한 행정부가 주도권을 쥐고 일관되게 행동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많은 전문가들은 북한을 "보채는 아이"라고 부른다.

때문에 가장 바람직한 정책은 북한을 아예 무시하는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그런 전략을 어떻게 평가하나.

"북한을 그냥 내버려 둘 수는 없다.

북한은 동북아시아에서 많은 문제를 일으킬 가능성이 매우 높은 나라다.

한반도는 미국 일본 중국 러시아 등 세계 4대 강국의 이해가 밀접하게 얽혀
있는 지구상의 유일한 지역이다.

난폭하고 도발적인 평양정권을 무시하기에는 복잡한 이해관계가 너무나
많이 걸려 있다.

북한이 이미 미국의 식량지원을 가장 많이 받고 있는 나라라는 사실은
이같은 점을 반증하는 것이다"

-클린턴 행정부의 대북정책을 어떻게 평가하나.

"미국과 북한과의 수교 등 관계 정상화, 경제제재 해제, 식량지원 등의
유화정책으로 지난 50년간 잘못된 북한의 정책을 전환시킬 수 있는지는 더
두고 봐야할 것이다.

클린턴 행정부는 북한처럼 작고 하찮은 나라로부터 협박을 당해 왔다"

-지난 9월 김대중대통령을 만나 이른바 "햇볕정책"과 관련해 여러 가지
얘기를 나눈 것으로 알고 있다.

김대통령의 햇볕정책을 어떻게 평가하나.

"김대통령을 만났을때 햇볕정책도 중요하지만 때때로 소나기(rain shower)
정책도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지난번 서해 해상에서 있었던 북한의 군사적 도발에 타협하지 않은 것은
김대통령의 햇볕정책이 올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음을 확인해 주는 것이다.

북한정권은 남한과의 관계개선이 불가피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물론 그것이 어느 한쪽 위주의 일방적인 것으로 전개되어서는 곤란하다.

앞으로 한국과 미국 일본이 좀더 긴밀하게 협조하면서 중국을 이 대열에
동참시킬수 있다면 평화적인 방법으로 북한의 고립상황을 종식시키고 세계
공동체로 이끌어 낼수 있을 것이다.

그것이 우리뿐 아니라 한국 여야 정치지도자들의 궁극적인 목적이라는
것도 잘 알고 있다"

-현대그룹이 북한과의 경제 교류에 매우 적극적이다.

이같은 민간 차원의 활발한 경제교류가 평화적인 남북관계의 주춧돌을 쌓는
일이 될 수 있을 것으로 보는가.

"그렇다고 본다.

경제적인 차원에서 남.북한 기업과 민간인들의 긴밀하고 구조적인 관계가
정착되는 것은 매우 올바른 방향이라고 생각한다"

-한국경제가 서서히 위기를 탈출하고 있는 것으로 보도되고 있다.

정말 그렇다고 보는가.

"한국경제의 회복이 사실이라고 믿고 있다.

기업 노동 정부 3개 부문에서 진행된 개혁이 모두 좋은 결과를 맺고 있기
때문이라고 본다.

기업은 혹독한 구조조정을 받고 있고 노동시장에선 노동자들이 기업과 함께
공존해야 한다는 것을 인식하고 있으며 한국 기업들이 결코 살찐 황소가
아니라는 것을 배우고 있다.

정부도 이제 관료주의가 한국 국민이나 경제를 위해 결코 바람직하지 않은
것임을 깨우치고 있는 것으로 느끼고 있다"

-한국의 개혁과 관련, 비판적인 견해도 적지 않다.

예를들어 일본의 오마에 겐이치 박사는 한국정부가 맹목적으로 미국모델을
따른다고 비판하고 있다.

재벌중심으로 성장해온 한국 경제의 경쟁력을 약화시킬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그런 얘기가 들리는 것은 불행한 일(sad one)이다.

물론 미국의 모델이 반드시 따라야 하는 경제모델이라고 볼 수는 없다.

그러나 공개경쟁 시장원리가 경제적 어려움에서 탈출하거나 경제적으로
성공할 수 있는 매우 좋은 방법이라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다"

-미국과 중국의 세계무역기구(WTO) 가입 협상이 타결됐다.

"협상이 어렵게 타결된 것은 두 나라의 국내 정치문제와 깊은 연관이 있다.

두 나라 모두 중국의 WTO 가입문제를 정략적으로 이용하며 각각 상대방을
두들기는 채찍으로 이용해 왔다는 뜻이다.

미행정부와 중국이 중국의 WTO 가입에 합의했지만 최근 워싱턴 정가의
움직임을 보면 의회가 올해안에 이를 승인할 가능성은 많지 않아 보인다"

-중국과 대만간의 긴장관계도 쉽게 풀릴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중국과 대만간의 문제는 당사자들이 결정해야 할 문제라고 생각한다.

물론 그런 결정에 중국본토의 물리적인 힘이 개입되어서는 곤란하다.

베이징으로부터의 강압이나 압력은 대만인들과의 긴밀한 관계를 촉진하는
길이 될 수 없다"

-최근 국제금융시장에서 새로운 금융구조(new financial architecture)가
현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실제 이를 뒷받침할 만한 실질적이고 구체적인 움직임이 있는 것인가,
아니면 논쟁만 벌이고 있는 상태인가.

"새로운 금융구조는 아시아 뿐 아니라 전세계 자본시장에서 분명 뜨거운
토론주제다.

알다시피 공화당의 상원 원내총무인 트렌트 로트 상원의원은 얼마전에 나를
국제 금융기구자문위원회(International Financial Institution Advisory
Commission)의 위원으로 임명했다.

11명으로 구성된 이 위원회는 내년 초까지 의회에 국제금융기구의 구조개혁
과 관련된 보고서를 제출해야 한다.

구조개혁 대상기관에는 IMF, 세계은행, 스위스의 국제결제은행(Bank for
International Settlements) 및 다른 국제 기구도 대부분 포함돼 있다.

이제 막 이 작업을 시작한 상태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우리는 선입견을 배제하려 노력하고 있다.

위원들은 모두 국제금융기구의 필요성은 인정하고 있다.

이는 현재의 구조에 문제가 많다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다.

아마 몇 달 지나면 매우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대안들이 제시될 것이다"

-일본경제에 대해서도 전망이 엇갈리고 있다.

일본경제가 바닥을 쳤다고 보는가.

특히 일본의 재정 금융정책을 어떻게 평가하고 있는가.

"일본경제는 적어도 외면상으로는 서서히 회복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일본 전체의 시스템이 갖고 있는 특성상 경제회복의 속도가 10~20년
전보다 더디다.

노령화에 따른 경제활동인구가 적다는 인구분포적 문제가 그 기저에 깔려
있는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때문에 정말 일본경제가 회복되고 있는 것인지는 아직까지 확신하기 어렵다.

물론 기나긴 경기 침체기간은 지난 것 같다.

아마 좀더 "관망(wait and see)"해야 할 것이란 표현이 가장 적절하다고
본다"

-유가가 너무 높은 것 아닌가.

많은 사람들이 산유국간의 카르텔 결속력에 놀라고 있다.

이같은 카르텔의 결속이 얼마나 길게 유지될 것으로 보는가.

"석유 값이 높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지금까지의 가격은 인위적으로 너무 낮게 형성되어 온 것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가격이 높아진 것은 카르텔이 작동하고 있기 때문만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세계경제가 회복되고 있고 세계적으로 석유수요가 많아지고 있기 때문
이기도 하다.

석유의 시장가격은 세계 경제활동이 얼마나 활발한가와 대체연료의 공급
가능성에 따라 항상 달라져 왔다.

일반적으로 석유가격이 높아질 때 대체연료공급이 더욱 활발하게 되고 또
그것이 세계시장에서 가격을 떨어뜨리는 압력으로 작용한다.

세계는 이런 교훈을 잘 되새겨야 할 것이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11월 18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