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시라고라? 강원도? 워메 못 간당께. 워쩔라고 그라시오"

전남 해남의 땅끝마을에서 시골 할머니가 길 가는 이의 소맷자락을
붙잡는다.

세상에 강원도까지 걸어서 가겠다니.

그것도 여자 혼자서.

그 이의 이름은 한비야(41)다.

지난 6년동안 전세계 65개국 오지를 누비며 도보 여행했던 "바람의 딸"이
이번엔 우리 국토 종단에 나섰다.

해남 땅끝마을에서 강원도 통일전망대까지 2천리 길이다.

역시 두 발에만 의존하는 여행이다.

한씨가 49일동안 우리 땅을 밟으며 느낀 여행 기록을 "바람의 딸, 우리 땅에
서다"(푸른숲, 7천9백원)에 담아냈다.

전세계를 자기집 앞마당처럼 다니던 그가 한반도에 눈길을 돌린 것은 세계
여행길에서 만난 한 미국인 때문이었다.

삼촌이 임실에서 평화봉사단으로 일한 적이 있다며 반기던 푸른 눈의 이방인
앞에서 정작 자신은 임실이 어디에 붙어있는지 도무지 알수 없었던 것이다.

그 자리에서 국토 종단을 결심하고는 소풍 앞둔 아이마냥 들뜬 마음을
주체하지 못한다.

그리고는 푸른 보리가 잔디만큼 자란 지난 3월3일 드디어 땅끝마을에서
신발끈을 바짝 조여 매고는 길을 떠난다.

한발한발 내딛는 그의 발걸음은 비록 느리지만 우리 땅과 마주한다는
설레임으로 가득하다.

느림의 아름다움이랄까.

자동차로 휙 지나갈 때는 느끼지 못할 풍광들이 여행객의 마음 한켠을
차지한다.

처음 만나는 시골 할머니에게 하룻밤 신세를 지며 설겆이도 대신 해드리고
말 동무도 되어주며 푸근한 인정을 느낀다.

그러나 가슴 아픈 면도 없지않다.

곳곳에 세워진 열녀비를 바라보며 그는 인습의 틀에 갇혀 희생을 강요당했던
이 땅의 수많은 어머니들을 안타까워한다.

"열녀를 만드는 사회"에 대한 저자의 갑갑함이 군데군데 묻어있다.

언제 끝나나 싶게 시작했던 여행은 어느덧 강원도로 접어들면서 막바지로
치닫자 아쉬움이 앞선다.

통일전망대 앞 철조망에서 멈춘 여행은 국토 종단의 끝이 아니라 오히려
시작이다.

그는 벌써 2천 몇년 어느날 저 위쪽 함경북도 온성을 향해 가벼운 발걸음을
옮기는 자신의 모습을 꿈꾼다.

그땐 아마 이런 대답을 듣겠지.

"이 에미나이, 거기가 어디라고 가려고 하지비. 못 간단 말입니다"

< 박해영 기자 bono@ked.co.kr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11월 18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