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토론자 : 남일총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위원
노부호 서강대 교수
전성철 미국 변호사(부드러운 사회 연구원 대표)
정갑영 연세대 교수
사회 : 최필규 산업1부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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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업이 부채비율을 2백% 이내로 낮추는데 비상이 걸렸다.

연말까지 약속을 지키지 않으면 금융제재를 받을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시간에 쫓겨 부채를 줄이려다 보니 부작용도 적지 않다.

헐값에 자산을 팔게되는 사례도 빈번하다.

또 자기자본을 확충하기 위한 증자를 무리하게 추진해 금융시장 왜곡현상이
발생할 것이라는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한국경제신문은 전국경제인연합회와 공동으로 부채비율 2백% 정책 등
정부의 대기업 개혁정책을 점검하고 보완책을 찾기 위한 긴급 좌담회를
마련했다.

서울 여의도 전경련회관 4층 회의실에서 열린 이번 좌담회에서는 대기업
문제의 본질과 이를 해결하기 위한 대안도 함께 논의됐다.

사회는 최필규 산업1부장이 맡았다.

<> 최필규 산업1부장 =경제정책 초점이 대기업 개혁에 맞춰지다 보니
국민들은 외환위기 등 모든 문제가 재벌에서 비롯된 것으로 생각하게 됩니다.

대기업 정책을 평가하기 위해 먼저 재벌 문제의 본질을 명확히 해야할
텐데요.

<> 남일총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위원 =재벌은 국가경제를 운영하는
과정에서 생긴 기업조직이라고 할 수 있지요.

60년대 이후 정부가 공적 자금을 빌려 주고 필요한 사업을 육성하는 산업
정책의 인위적 산물이었던 거죠.

따지고 보면 한전 한국통신 등 공기업 구조와 크게 다를게 없습니다.

이를 위해선 정부가 금융산업을 지배하는 관치금융이 필요했습니다.

재벌은 자기돈을 얼마 들이지 않고도 큰 사업을 벌일 수 있었습니다.

재벌 시스템은 이렇게 생겨난 것이지요.

따라서 재벌문제를 정부와 재벌간 다툼으로 보지 말고 국가 경제를 운영
하는 시스템을 어떻게 가져갈 것인가라는 시각에서 접근하는게 바람직합니다.

<> 노부호 서강대 교수 =재벌 정책도 시장 중심으로 펼쳐져야 합니다.

그런데 정부 정책은 지나치게 통제지향적입니다.

재벌은 경제의 한 주체입니다.

그런 경제 주체에 대한 부정적 시각을 심어주는 정책이라면 재고돼야
합니다.

기업 경쟁력은 효율적 경영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부채비율을 낮추고 사외이사제를 도입한다고 경쟁력을 갖출 수 있는건
아닙니다.

독립경영을 하고 기업을 줄이라는 식의 정책은 과도합니다.

재벌을 개혁한다고 우리 경제의 경쟁력이 높아지는건 아니죠.

기업이 경쟁력을 높일 수 있도록 분위기를 조성하고 관치금융구조를 타파
하는게 더 중요합니다.

이를 위해선 정치가 경제에서 손을 떼고 성과중심 사회가 돼야 합니다.

<> 정갑영 연세대 교수 =재벌 문제에 접근할 때 행태와 조직으로 나눠
생각해야 합니다.

부당상속 및 내부자거래 등 행태가 잘못된 것은 당연히 바로 잡아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조직 경쟁력과 연관해 생각해보면 불가피했던 측면이 없지 않아요.

정경유착 시대에는 규모가 클 수록 협상력을 갖게 되지요.

큰 기업을 망하게 내버려둘 수 없지 않겠습니까.

또 개별 기업으론 브랜드 경쟁력을 갖출 수 없었습니다.

신뢰가 싹트지 않은 상황에서 가족경영이 유리한 측면도 있었지요.

기업은 주어진 여건에서 이윤을 극대화하는 쪽으로 스스로 변화해 가는
존재입니다.

재벌도 그렇게 봐야 합니다.

여건이 변하지 않으면 재벌이 개혁할 필요성이 떨어지고 결과적으로 개혁
속도가 더디게 마련입니다.

물론 기업의 소유 및 지배구조에 대한 룰을 정하는 것은 좋지만 불확실한
시장에서 기업 경영구조에 지나치게 개입하는건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 전성철 변호사 =재벌에 대한 개념이 정확하지 않습니다.

크거나 다각화했다고 재벌은 아닙니다.

기업 내부지배구조가 독재적인 성격을 띨 때 재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 기업이 수익을 내지 못해도 오너는 쫓겨나지 않았지요.

한마디로 책임을 지지 않았던 것입니다.

90년대 들어 미국이 일본을 제칠 수 있었던 것은 이사회가 수익을 내지
못하는 최고경영자를 내쫓는 관행이 정착됐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재벌 정책도 기업 지배구조쪽에 초점이 맞춰져야 합니다.

그런데 그동안 빅딜이나 부채비율 등 엉뚱한 곳에 에너지가 낭비된 측면이
있습니다.

<> 최 부장 =연말이 가까워지면서 부채비율 축소정책에 대한 논란이 다시
일고 있습니다.

논란의 초점은 획일적인 적용인데 상황변화에 맞게 탄력적으로 적용할
필요가 있는게 아닙니까.

<> 남 연구위원 =정부는 현재 시중 은행의 대주주입니다.

따라서 금융감독권 행사차원에서 대기업의 부채비율에 신경쓰는건 당연
합니다.

부채비율과 관련해 총론적 접근을 하는게 기업경영에 간섭하는 것을 의미
하지는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만약에 업종별로 가이드 라인을 제시했다면 또다른 불만을 샀을 것입니다.

<> 노 교수 =정부가 시장에 직접 개입하는 것보다 시장이 작동할 수 있도록
하는게 중요합니다.

정부는 망하는 기업을 살리면서 멀쩡하게 잘하는 기업은 때리는 정책을
펼치고 있지요.

부채비율을 잣대로 기업을 압박하는 나라는 우리밖에 없습니다.

이를 달성할 수 있는지 여부를 따져 보지 않고 획일적 비율을 강요할 경우
부작용을 낳을 수밖에 없지요.

<> 전 변호사 =재벌과 경영주를 동일시하는 것도 잘못입니다.

총수는 적은 지분으로 절대적인 권력을 쥐고 있지요.

더욱이 재벌은 국민의 돈을 활용해 사업을 하고 있습니다.

이같은 상황에서 어느정도 정부 개입은 불가피할 것입니다.

이사회가 작동하지 않을 경우 더욱 그렇지요.

부채비율을 일률적으로 적용할 근거는 없지만 절박한 상황에서 가이드라인을
제시한 것으로 봐야 할 것 같습니다.

<> 노 교수 =정부 간섭이 불가피한 상황이라면 기업 경쟁력을 높이는
쪽으로 개입해야 합니다.

무조건 부채비율 2백%를 강요하면 자산을 헐값에 팔아야 하고 외자를
맹목적으로 도입하게 되지요.

사업성이 높은 사업을 포기해야 하는 상황도 벌어지게 됩니다.

부작용이 클 수밖에 없습니다.

<> 최 부장 =부채비율 적용은 각 기업이 처한 사정을 어느정도 감안할
필요성이 있는 것 같습니다.

최근 발전설비 빅딜(대규모 사업맞교환)이 타결되면서 사실상 대기업간
빅딜은 마무리됐습니다.

빅딜에 대한 평가가 엇갈리고 있는데요.

<> 남 연구위원 =빅딜 역시 부실기업 정리차원에서 접근해야 할 것입니다.

사업구조조정을 통해 부실채권을 최소화하겠다는 취지가 깔려 있습니다.

빅딜을 통해 시장지배력이 높아지고 시너지 효과를 거둬 빚을 상환할 수
있는 능력이 커지게 되니까요.

워크아웃이 부실기업에 대한 정공법적인 접근이라면 빅딜은 기업간 자발적
합의에 의한 구조조정이라 평가할 수 있을 것입니다.

<> 전 변호사 =빅딜은 과잉시설과 과잉부채를 해결하는데 목적이 있습니다.

그렇다고 이 문제가 재벌 개혁의 본질은 될 수 없습니다.

결과적으로 빅딜로 재벌 개혁의 본질인 지배구조문제가 희석된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 정 교수 =사업구조조정이나 경영구조에 정부가 무조건 개입하는건 바람직
하지 않습니다.

시장이 역동적으로 변하기 때문이죠.

정부가 개입해 성공할 가능성은 높지 않습니다.

경제학자 하이에크 말대로 정부가 천재라면 가능하겠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
정부 개입은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

기업 지배구조와 관련해서 우선 공기업쪽에서 이상적인 모델을 만든 후
민간기업에 권고하는게 순서일 것입니다.

<> 노 교수 =변화무쌍한 환경에서 정부가 빅딜을 통해 규모의 경제를
달성하려는 것은 잘못입니다.

각 사업이 경쟁력을 갖추고 있느냐 여부를 따져야지 한사코 전문화를
고집할 필요는 없다고 봅니다.

<> 최 부장 =전경련의 중재로 빅딜이 사실상 마무리된 만큼 앞으로 적절한
후속조치를 마련하는게 중요할 것 같습니다.

<> 남 박사 =재벌문제는 비효율적 경제운영 방식을 개선하는 방법으로
풀어야 합니다.

먼저 금융산업을 시장논리에 맞게 움직이도록 민영화해야 할 것입니다.

제2금융권중 건전성 규제를 제대로 하면 자리를 지킬 수 있는 지배주주는
많지 않을 것입니다.

상법 개정을 통해 각종 제도를 마련했지만 아직 제대로 집행되지 않고
있습니다.

회사가 부채를 갚지 못하면 예전처럼 봐주지 말고 워크아웃을 적용해야
합니다.

물론 이 과정에서 기존 주주에게 재산상의 책임을 물어야 할 것입니다.

<> 최 부장 =이상적인 얘기같지만 대기업 그룹 계열사간 시너지 효과를
극대화하면서 투명경영도 할 수 있는 제도와 정책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특히 정부는 정책의 우선순위를 항상 염두에 두고 변화를 꾀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 노 교수 =경쟁력 제고의 관건은 기업혁신입니다.

혁신은 시장의 경쟁압력이 존재할 때 활발하게 진행되는 것입니다.

우리 사회 각 분야에 아직 권위주의가 많이 남아 있습니다.

정치가 경제에 관여하는 것도 바로 권위주의 산물이지요.

개혁 자체가 중요한게 아니라 경쟁력을 강화할 수 있도록 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만들 필요가 있습니다.

<> 전 변호사 =정부 정책의 추진 방향은 타당했다고 봅니다.

글로벌 스탠더드에 미흡한 기업에 자극을 주는건 당연합니다.

다만 정책 우선순위를 생각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빅딜에 연연한 것은 자원을 낭비하는 결과를 초래했습니다.

<> 정 교수 =재벌도 사회적 조직입니다.

살아 움직이는 유기체라고 봐야 합니다.

주변 여건이 변하면 같이 변합니다.

따라서 재벌을 형성시킨 요인이 먼저 바뀌어야 합니다.

경직적인 룰보다 기업들이 다양하게 선택하며 경쟁력을 갖추도록 제도를
마련해야 합니다.

반재벌 정서나 반기업문화를 형성하는 것은 장기적으로 시장경제에 부작용
을 가져올 수 있지요.

재벌을 해체하려면 이를 대체할 수 있는 기업조직 산업구조를 제시해야
합니다.

그래야 국민들에게 확신을 심어줄 수 있습니다.

< 정리= 이익원 기자 iklee@ked.co.kr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11월 13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