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한국은행이 내년도 우리나라 잠재성장률 수준을 4%로 발표한 것을 놓고
잔잔한 논란이 일고 있다.

한은이 물가불안 우려를 강조하기 위해 너무 보수적으로 계산했다는 것이
반론의 요지다.

이런 저런 방법으로 계산해 보더라도 우리경제의 잠재성장률은 거의 6%에
육박한다는 것이다.

민간연구기관들 뿐만아니라 정책당국까지 그같은 주장에 동조하고 있어
흥미롭다.

잠재성장률이란 원래 노동과 자본 등 생산요소를 완전가동하여 달성할수
있는 최대 성장률을 의미하지만 근래들어서는 추가적 인플레 압력을
일으키지 않으면서 달성 가능한 성장수준으로 규정하는 것이 일반적인
해석이다.

국가가 보유하고 있는 적정생산 능력이상으로 무리하게 생산규모를 늘리면
부작용이 따르게 마련이다.

기계도 모자라고 인력도 부족한 그런 상황에서는 필시 물건값도 오르고
인건비도 상승할 것은 자명하다.

따라서 이같은 사태가 우려될 경우 미리 금리인상과 통화긴축 등의 방법으로
수요를 억제해줌으로써, 다시말해 경기를 위축시켜 인플레를 막아야 한다는
것이 잠재성장률 추정의 논리적 배경이다.

문제는 그같은 판단의 근거가 되는 잠재성장률을 과연 얼마나 정확하게
추정할수 있느냐다.

여러가지 이론적 모형이 정립돼있기는 하지만 모두가 여러가지 가정하에서
도출되는 결론에 불과하다.

예컨대 경제성장이 과거의 추세대로 움직인다는 가정을 세우거나 기술진보
인구증가 노동생산성 등 경제활동에 영향을 주는 여러가지 변수들을 추정하고
이를 대입시켜 산출해 내는 것이다.

결국 가정이 잘못되면 현실과 유리된 결론이 도출될 우려가 있고, 작성자의
상황인식 차이에 따라 똑같은 사안에 대해 정반대의 처방이 나올수 있는
것이 경제예측이다.

이번 한국은행의 잠재성장률 전망도 예외는 아니다.

따라서 한은의 추정이 전적으로 옳다거나, 민간연구기관들의 주장이 타당
하다는 판단을 하는 것 자체가 무리다.

다만 상식적인 판단으로 한두가지 의문은 남는다.

우선 아직도 실업률이 높고, 공장가동률이 80%에도 못미치는 상황을 감안
한다면 벌써부터 공급애로로 인한 인플레 위험을 걱정할 때인가 하는 점이
소박한 의문중의 하나다.

물론 한국은행의 설명대로 외환위기이후 금융경색 및 내수침체로 설비투자가
극히 부진했던데다 구조조정에 따른 노동수급구조의 변화로 경제활동인구의
증가세가 둔화됐기 때문에 생산능력의 위축 또는 증가세 둔화는 어느정도
인정할수 밖에 없다.

그러나 올해의 높은 성장률이 98년의 마이너스 성장에 따른 기술적 반등의
요인이 크다고 보면 경제활동의 정상수준을 회복하기까지의 성장여력은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성장률이 4%를 초과하면 인플레 위험이 높다는 경고는 선뜻 이해하기
어렵다는 얘기다.

또 다른 의문은 설령 잠재성장률이 4%라 하더라도 실제성장률을 여기에
맞추어야 하는 것이 올바른 처방인가 하는 점이다.

잠재성장률을 높이는 방법은 없겠느냐는 얘기다.

물론 설비투자가 늘어난다고 해서 곧바로 공급확대로 이어지지 못하는
어려움은 있지만 성장잠재력을 키우는 일 또한 소홀히 할 과제는 아님은
분명하다.

지금 우리경제가 처한 여러가지 정황으로 보아 물가불안의 우려가 전혀
없다고 판단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때문에 물가와 화폐가치의 안정을 책임지고 있는 한국은행의 걱정은 꽤나
큰 편이다.

그렇다고 잠재생산능력의 부족이 그 원인이라고 진단하는 것이 옳은지는
좀더 깊이 생각해볼 문제다.

더구나 아직도 실업률 자체가 높을 뿐만아니라 취업자라 하더라도 불완전
취업이 적지않은 현실에서 긴축정책의 선회는 시기적으로 때 이른 감이 있다.

긴축으로 인한 인플레대책의 고통은 주로 저소득층에게 전가되게 마련이다.

그렇지않아도 외환위기이후 분배구조가 악화돼 중산층 몰락과 빈곤층 확대가
정책현안으로 대두되고 있음을 감안하면 더욱 신중을 기해야 한다.

오히려 자원의 합리적 배분이 제대로 이뤄지지 못하는 시장기능의 제약이
물가불안을 부추길 우려는 없는지 점검해 볼 때다.

사실 경제의 안정성장을 유도해가는 처방은 여러가지가 있을수 있고, 또
정책의 대내외적인 파급효과까지를 감안해 최선의 결론을 내리기란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따라서 주관적인 관점에 따라 피상적인 의견을 개진하는 것 자체가 위험한
일이기도 하다.

그러나 경제정책 운용이 결코 물가안정 그 자체만을 목표로 삼아서는
안된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한은이 제시한 내년도 잠재경제성장률 4%가 적절한지의 논란을 벌이기에
앞서 당분간 경제정책 목표의 우선순위를 어디에 두어야 할지에 대해 정부와
중앙은행, 그리고 민간 기업들까지 참여해 좀더 진지한 논의를 거쳐 공감대를
이뤄나가는 일이 선행돼야 할 것이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11월 12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