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통일 이전 신라의 돌무지덧널무덤(적석목곽분)에서 주로 출토되는
출자형 금동관과는 생김새가 다른 금동관이 최근 공개됐다.

이 금동관은 순구리판에 금과 수은을 합금한 아말감을 도금한 것으로
밝혀졌다.

이를 통해 당시 금동관 제작기술의 실체를 알 수 있게 돼 관심을 모으고
있다.

고 신라시대 금관은 일반적으로 관테의 앞과 좌우에 세개의 출자형 입식이
있다.

뒤쪽에는 사슴뿔 모양의 돌기가 두개 솟아있다.

이에 비해 국립중앙박물관이 보존처리를 거쳐 공개한 이 유물은 출자형
입식이 다섯개나 된다.

가지끝에는 보주(구슬)형 장식과 함께 쇠뿔 모양의 돌기가 솟아있다.

가지끝도 각각 분리돼 있다.

중앙박물관측은 "이같은 양식을 하고 있는 금동관은 국내에서는 보기
힘들다"며 "일본 군마현에서 발견되는 것과 비슷하다"고 설명했다.

지금까지 출자 형태의 금동관은 신라중심지였던 경주의 여러 적석목곽분을
비롯해 삼국통일 이전 신라에 속해 있던 부산 복천동과 양산 부부총, 대구
비산동, 경산 조영동, 합천 옥전, 안동 지동, 단양 신리, 파주 성동리, 동해
추암동 등지에서 출토됐다.

이번에 공개된 금동관은 이들 지역에서 발견되는 금관과는 형태와 재질이
다르다.

따라서 왕이나 왕족이 아닌 경주의 지배층 혹은 신라에 통합된 주변지역
실력자들이 신분표시를 위해 부장품 용도로 제작한 것으로 추정된다.

중앙박물관 김길식 학예연구사는 "시베리아의 샤먼이 쓰던 관에 나무와
사슴뿔을 장식한 예가 있다"며 "이 금동관은 신라 지배층이 북방
유목민계였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자료로 평가된다"고 말했다.

< 강동균 기자 kdg@ ked.co.kr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11월 5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