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칼럼] 김우중 회장을 생각하며 .. 신상민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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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상민 < 본사 논설실장 >
내가 김우중 회장을 처음 본 것은 지난 76년 여름이다.
인수한지 얼마되지 않았던 한국기계(현 대우중공업) 공장에서 작업복
차림이었던 그는 "나는 소유하는 기업인이 아니라 성취하는 기업인이 되고
싶다"고 말했었다.
"소유하는 기업인"과 "성취하는 기업인"이 어떻게 다른 것인지 그 의미가
분명하게 전달되지는 않았지만, 그때 기억은 지금도 생생하다.
사원식당에서 줄을 서서 식사를 받아가던 그의 모습은 신선했다.
총수의 그런 행동은 그때만 해도 파격이었으니까.
20년이라는 세월이 지나면서 그를 알만큼 알고난 뒤지만, 지난 96년과
98년초 저녁 먹는 자리에서 김 회장이 밝힌 그해 국제수지 전망은 "역시
김우중은 김우중"이라는 느낌을 갖게 했다.
정부에서 50억달러 정도의 적자를 점치고 있을 때 2백억달러를 훨씬 넘을
것으로 내다본 것도 그렇지만, IMF로 모두가 우왕좌왕하고 있는 상황에서
4백억~5백억달러의 무역흑자가 가능할 것이라고 단언한 것은 특히 그렇다.
한 무역회사 사원에서 종업원 10만명을 넘는 재계랭킹 2위의 대기업그룹
총수로 뛰어오른 김 회장의 드라마는 "신화"라는 표현이 결코 어색하지 않다.
그가 우리 경제에 미친 영향이 엄청났다는 것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그가 거느린 기업군의 비중도 컸지만, 제2의 김우중을 꿈꾸는 숱한 젊은이
들을 부르고 그것이 우리 경제의 큰 활력이 됐다는 점에서 김우중신드롬은
더욱 되새길 만하다.
이제 그의 신화는 끝났다.
자산보다 부채가 30조원이상 많을 것이라는 얘기가 나도는 가운데 대우는
하잘 것 없는 모래성으로 급전직하 평가절하되고 있다.
이런 상황인데도 김우중 회장이 귀국하지도 못하고 있는 것은 더욱 안쓰럽게
느껴진다.
그 사람처럼 되고 싶다는 꿈을 한번쯤 꾸었던 50대의 눈에는 그렇다.
누가 뭐래도 그는 우리 시대의 히어로였기에 그렇게 느낀다.
형사처벌이 두려워 귀국하지 못하고 있다는 식의 억측은 "우리들의 우상"
에게는 글자 그대로 억측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김우중 회장은 무엇보다도 먼저 바로 이런 점을 인식하고 처신해야 한다.
자신에게 주어진 "운명"이 산산히 부서져야 하는 것이라 하더라도 이로부터
도망치려 해서는 안된다.
앞선 물결이 부서짐을 두려워하거나 거부하지 않기에 파도가 영원히 계속될
수 있는 것과 같은 이치에서다.
제2의 김우중을 꿈꾸는 젊은이들을 위해서는 퇴장하는 마지막 순간에서도
김우중다워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는 김 회장에 대한 사회적인 평가가 아무리 나쁘게 나오더라도 국민경제에
엄청난 부담을 준 "결과"에 대해 책임자라는 점에서 있을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가 회사재산을 개인적으로 빼돌린 기업인, 기업은 망해도 잘사는
기업인의 범주에 속한다는 주장에는 절대로 동의하지 않는다.
20여년을 지켜보면서 갖게된 믿음이다.
부채가 자산을 엄청나게 초과하고 있는 것은 엄연한 사실이지만, 그 숫자는
시각에 따라 달라질 개연성이 크다.
이른바 청산가치적인 평가냐, 기업을 살린다는 전제 아래서의 존속가치적
평가냐에 따라 대우와 은행측 주장이 엇갈리는 것도 그런 측면에서 이해할
수 있다.
(주)대우가 소유하고 있는 대우자동차 주식은 현재상황에서 은행이 볼 때는
사실상 자산가치가 제로(0)지만, 대우측에서 그것을 취득하던 시점에 근거를
두고 가치가 있다고 주장하는 것도 결코 터무니없다고 하기는 어렵다.
대우 도산과 관련된 김우중 회장 책임문제도 시각에 따라 논란의 여지가
크다.
상법상에 규정된 이사의 충실의무나 선관의무를 따질 필요도 없이 김 회장이
대우부실에 대해 무한책임을 져야할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
그렇다고 정부나 은행은 책임이 없다는 주장은 결코 성립되지 않는다.
대우 사태가 사실상 표면화된 단계에서도 대우채권의 높은 금리를 이용,
무모한 수익률경쟁을 벌인 투신사등은 물론이고, 은행 역시 대출심사부실로
대우사태를 확대한 책임을 면할 수는 없다.
부실한 기업이 부실기업인수로 무모한 확장을 해왔다지만, 그것을 누가
어떻게 하도록 만들었는지 정부관계자들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대우사태와 관련된 책임추궁이 여론몰이식으로 이루어져서는 후유증을
극대화할 우려가 크다.
큰 일이 났으므로 누군가를 구속해야 한다거나, 민사적인 배상책임도
가능한한 광범위하게 묻는 형식이 돼야한다는 생각은 꼭 옳지만은 않다.
대우사태로 인한 손실을 최소화해야한다는 측면에서 일을 풀어나가야 한다.
사표를 낸 대우 주력기업 사장들이 마지막 순간까지 최선을 다해야할 것은
그들의 당연한 책무지만, 정부에서도 그들의 자발적인 협력을 유도하는 것이
옳다.
공적자금 회수를 위한 배상소송제기범위도 현실에 맞게 적절히 조정돼야할
것은 물론이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11월 3일자 ).
내가 김우중 회장을 처음 본 것은 지난 76년 여름이다.
인수한지 얼마되지 않았던 한국기계(현 대우중공업) 공장에서 작업복
차림이었던 그는 "나는 소유하는 기업인이 아니라 성취하는 기업인이 되고
싶다"고 말했었다.
"소유하는 기업인"과 "성취하는 기업인"이 어떻게 다른 것인지 그 의미가
분명하게 전달되지는 않았지만, 그때 기억은 지금도 생생하다.
사원식당에서 줄을 서서 식사를 받아가던 그의 모습은 신선했다.
총수의 그런 행동은 그때만 해도 파격이었으니까.
20년이라는 세월이 지나면서 그를 알만큼 알고난 뒤지만, 지난 96년과
98년초 저녁 먹는 자리에서 김 회장이 밝힌 그해 국제수지 전망은 "역시
김우중은 김우중"이라는 느낌을 갖게 했다.
정부에서 50억달러 정도의 적자를 점치고 있을 때 2백억달러를 훨씬 넘을
것으로 내다본 것도 그렇지만, IMF로 모두가 우왕좌왕하고 있는 상황에서
4백억~5백억달러의 무역흑자가 가능할 것이라고 단언한 것은 특히 그렇다.
한 무역회사 사원에서 종업원 10만명을 넘는 재계랭킹 2위의 대기업그룹
총수로 뛰어오른 김 회장의 드라마는 "신화"라는 표현이 결코 어색하지 않다.
그가 우리 경제에 미친 영향이 엄청났다는 것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그가 거느린 기업군의 비중도 컸지만, 제2의 김우중을 꿈꾸는 숱한 젊은이
들을 부르고 그것이 우리 경제의 큰 활력이 됐다는 점에서 김우중신드롬은
더욱 되새길 만하다.
이제 그의 신화는 끝났다.
자산보다 부채가 30조원이상 많을 것이라는 얘기가 나도는 가운데 대우는
하잘 것 없는 모래성으로 급전직하 평가절하되고 있다.
이런 상황인데도 김우중 회장이 귀국하지도 못하고 있는 것은 더욱 안쓰럽게
느껴진다.
그 사람처럼 되고 싶다는 꿈을 한번쯤 꾸었던 50대의 눈에는 그렇다.
누가 뭐래도 그는 우리 시대의 히어로였기에 그렇게 느낀다.
형사처벌이 두려워 귀국하지 못하고 있다는 식의 억측은 "우리들의 우상"
에게는 글자 그대로 억측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김우중 회장은 무엇보다도 먼저 바로 이런 점을 인식하고 처신해야 한다.
자신에게 주어진 "운명"이 산산히 부서져야 하는 것이라 하더라도 이로부터
도망치려 해서는 안된다.
앞선 물결이 부서짐을 두려워하거나 거부하지 않기에 파도가 영원히 계속될
수 있는 것과 같은 이치에서다.
제2의 김우중을 꿈꾸는 젊은이들을 위해서는 퇴장하는 마지막 순간에서도
김우중다워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는 김 회장에 대한 사회적인 평가가 아무리 나쁘게 나오더라도 국민경제에
엄청난 부담을 준 "결과"에 대해 책임자라는 점에서 있을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가 회사재산을 개인적으로 빼돌린 기업인, 기업은 망해도 잘사는
기업인의 범주에 속한다는 주장에는 절대로 동의하지 않는다.
20여년을 지켜보면서 갖게된 믿음이다.
부채가 자산을 엄청나게 초과하고 있는 것은 엄연한 사실이지만, 그 숫자는
시각에 따라 달라질 개연성이 크다.
이른바 청산가치적인 평가냐, 기업을 살린다는 전제 아래서의 존속가치적
평가냐에 따라 대우와 은행측 주장이 엇갈리는 것도 그런 측면에서 이해할
수 있다.
(주)대우가 소유하고 있는 대우자동차 주식은 현재상황에서 은행이 볼 때는
사실상 자산가치가 제로(0)지만, 대우측에서 그것을 취득하던 시점에 근거를
두고 가치가 있다고 주장하는 것도 결코 터무니없다고 하기는 어렵다.
대우 도산과 관련된 김우중 회장 책임문제도 시각에 따라 논란의 여지가
크다.
상법상에 규정된 이사의 충실의무나 선관의무를 따질 필요도 없이 김 회장이
대우부실에 대해 무한책임을 져야할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
그렇다고 정부나 은행은 책임이 없다는 주장은 결코 성립되지 않는다.
대우 사태가 사실상 표면화된 단계에서도 대우채권의 높은 금리를 이용,
무모한 수익률경쟁을 벌인 투신사등은 물론이고, 은행 역시 대출심사부실로
대우사태를 확대한 책임을 면할 수는 없다.
부실한 기업이 부실기업인수로 무모한 확장을 해왔다지만, 그것을 누가
어떻게 하도록 만들었는지 정부관계자들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대우사태와 관련된 책임추궁이 여론몰이식으로 이루어져서는 후유증을
극대화할 우려가 크다.
큰 일이 났으므로 누군가를 구속해야 한다거나, 민사적인 배상책임도
가능한한 광범위하게 묻는 형식이 돼야한다는 생각은 꼭 옳지만은 않다.
대우사태로 인한 손실을 최소화해야한다는 측면에서 일을 풀어나가야 한다.
사표를 낸 대우 주력기업 사장들이 마지막 순간까지 최선을 다해야할 것은
그들의 당연한 책무지만, 정부에서도 그들의 자발적인 협력을 유도하는 것이
옳다.
공적자금 회수를 위한 배상소송제기범위도 현실에 맞게 적절히 조정돼야할
것은 물론이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11월 3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