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영분 < 방송 작가 >

내 골프가 유독 초라해 보이는 요즘이다.

낸시 로페즈, 애니카 소렌스탐, 그리고 박세리...

비교 대상이 곁에 있기에 느껴지는 열등감이다.

"나는 왜 저들만큼 못할까?"

박세리처럼 공동묘지에 가지도, 하루에 1천개의 볼을 연습하지도 않았으면서
감히 비교를 할수 있는 이유...

바로 골프가 너무 쉬워 보이기 때문이다.

박세리 골프라고 별 다르겠는가.

클럽별로 거리 딱딱 맞추고 방향만 잘 잡아서면 다 될듯한데, 그리고 거리나
방향쯤은 몇 달 맘잡고 연습하면 될듯한데.

그런데 그 "조금만"의 경지가 왜 이리 다다르기 어려운 것인지.

지금부터 반년전에 한 선배와 플레이를 한 적이 있었다.

구력이 20년에 달한다는 선배였다.

물론 선배와 나는 엄청난 스코어차가 났지만 미스샷 실수만 줄인다면 그
선배를 곧 따라 잡을수 있을 것도 같았다.

아니 연습은 커녕 그날 내가 조금만 신중했더라도 충분히 동등한 플레이를
했을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로부터 반년.

나는 그동안 열심히 칼을 갈았다.

매일매일 연습장에 다녔으며, 여건이 되는대로 필드에도 나갔다.

그리고 며칠전, 그 선배와 다시 플레이할 기회가 돌아왔다.

1번홀에서 세컨드샷이 거의 그린에 올라갔고 퍼팅도 만족했다.

선배도 좀 흠칫한 눈치였다.

기세등등하여 2번홀.

머리속에는 온통 "드디어 뭔가를 보여줄 때"라는 생각으로 가득찼다.

그런데 웬걸.

욕심이 차기 시작하니 볼이 제대로 맞을 리 없었다.

힘이 잔뜩 들어가 산으로 솟고, 내로 빠지고...

깊은 러프에서도 무조건 스푼을 잡아쥐는 무모함을 보였으며 홀을
거듭할수록 그 증상은 심해졌다.

분명 6개월이 지났으면 나아져 있어야 할 내 골프는 "영분씨는 예전하고
달라진게 없는 것 같아"라는 평가를 듣고 18홀을 마쳤다.

하지만 나는 아직도 그날 플레이에 미련을 버리지 못했다.

몸에 조금만 힘을 뺐어도 될일이었다.

조금만 방향을 맞추고, 조금만 힘을 빼고, 조금만 천천히 하면 다
될듯한데...

그 "조금만"이 잘 안되는 점, 그게 골프의 가장 어려운 점이라고 한다.

너무 쉬워보여서 쉽게 포기하지도 못하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며
평생을 매달리게 되는 것.

비록 6개월간의 연습에도 나아진바 별로 없었지만, 박세리의 샷이
쉬워보이는 한 나는 계속 골프와 씨름할 것이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10월 29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