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초기 골프역사상 가장 흥미로웠던 선수중에 월터 트래비스(Walter
Travis 1862~1927)가 있었다.

트래비스는 19세기에서 20세기로 접어드는 시대에 미국 골프계의 첫 골프
영웅이었다.

호주태생으로 어렸을 때 부모를 따라 이민을 왔다.

35세가 되어서야 골프를 독학으로 배웠고 그 1년 후에 US아마추어 오픈대회
에서 준결승전에 오르면서 "Old Man"이란 별명으로 골프계에 입문하였다.

그리고 3년 뒤 1900년엔 US 아마추어오픈 우승을 계기로 이 대회를 두 번
(1901, 1903) 더 우승한다.

깡마른 체구로 샷의 거리는 짧지만, 집요한 연습과 강한 집착심으로 다져진
그의 퍼팅은 하도 경이롭고 정확해 그린 위에서 상대선수들을 공포로
몰아넣었다.

4년만에 US 아마추어 오픈을 세번 석권한 트리배시는 1904년 당대 최고의
타이틀인 브리티시 아마추어오픈에 첫 도전을 한다.

준결승에서는 당시 브리티시오픈과 브리티시아마추어오픈 우승자인 해럴드
힐톤을 누르고 결승에 진출한다.

결승에서는 당시 최고 장타자인 에드워드 블랙웰이 트래비스보다 40~50야드
를 앞지르는 드라이버샷으로 위협을 했다.

그러나 경기운영에서 한수 위인 트래비스는 정교한 구질과 그가 새로
디자인해 만든 "쉐넥태디"(Shenectady) 퍼터로 그를 4-3으로 따돌리고
우승하게 된다.

그는 외국인이 처음 우승을 하는 기록을 남긴다.

이날의 유명한 일화가 전해지는데 "Driving for show, Puttting for dough"
다.

이 경기를 끝내고 트래비스가 영국 신문기자들에게 한 말이다.

"드라이빙은 쇼이고 퍼팅은 돈"이란 이야기의 유래는 여기서 시작되었다는
것을 독자들은 기억하길 바란다.

이 사건을 영국인들이 가만히 놔둘 리가 없었다.

그들은 트래비스가 새로 만든 쉐넥태디 퍼터(샤프트가 퍼터힐쪽이 아닌
가운데 붙어 있음)을 다시는 영국에 가져와 사용하지 못하도록 금지령을
내렸다.

또 그의 행동이 오만불손했다는 등 말도 안되는 트집을 잡았다.

이것은 당시 그들의 심정이 어떠했나를 말해준다.

이 새로운 퍼터에 대한 금지령으로 인해 USGA는 의형제같았던 로얄 앤션트
골프클럽(R&A)과의 균열이 생기고 모든 골프규칙및 골프용품에 대한 규정을
독자적으로 하기 위해 R&A로부터 떨어져 나온다.

이로 인해 영국에선 금지령이 내린 쉐넥태디 퍼터가 USGA에서는 승인을
받았다.

그 후 트래비스는 1909년 아메리칸 골프잡지를 발행하고 골프장 디자이너로
활약을 하며 생을 마친 기이한 골퍼로 남는다.

< 전 미PGA 티칭프로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10월 27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