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년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로버트 먼델은 1932년 생이니 칠순이 멀지않은
캐나다 출생의 노학자이다.

인터넷으로 그의 홈페이지에 들어가보면 두살배기 남자 애기의 귀여운
사진이 첫 화면을 가득 채우는데 손자라고 지레짐작하면 큰 오산이다.

재혼으로 맞이한 부인 발레리와의 사이에서 생겨난 늦둥이 니콜라스의
모습인 것이다.

먼델은 폴 크루그먼의 말처럼 동년배 경제학자들에 비해 15년 내지 20년을
멀리 내다보고 앞서 살아온 사람이다.

나이 30대에 이미 국제경제학 분야에서 빼어난 업적을 이룩해 놓고선, 그후
30여년간을 남들이 뒤늦게나마 자신의 공적을 인정해 주기를 기다린 셈이
되었던 것이다.

먼델의 업적중에서 먼저 꼽아야 할 것은 통화정책과 재정정책의 효과가
환율제도의 변경이나 국제자본 이동에 따라 어떻게 달라지는가 하는 점을
분명하게 보여주었다는 것이다.

60년대 대부분의 미국 경제학자들은 대외거래를 일단 무시한 채 국내
물가안정과 완전고용을 달성하기 위한 정책조합의 모색에 관심을 집중하고
있었다.

미국경제에서 차지하는 무역의 비중이 워낙 낮았고 환율은 브레튼 우즈
체제하의 고정환율제가 일반적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먼델은 이러한 폐쇄형 경제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개방형경제를
상정하여 이론을 전개했다.

또한 언젠가는 고정환율체제가 무너지고 변동환율제도가 도입될 것으로
예상해 먼델-플레밍모형이라는 독창적인 이론을 1963년에 개발하기에
이르렀다.

이 모형으로 인해 대내균형(물가 및 고용안정)과 대외균형(국제수지 안정)의
구분이 이루어지고 어떤 부문에 어떤 정책이 쓰여야 제대로 효과가 날 것인가
하는 점이 분명해지게 되었다.

작고 단순하면서도, 정책변화가 불러오는 소득 금리 고용 국제수지 환율
물가의 움직임을 명료하게 보여주기 때문에 그의 제자인 돈부시는 이 모형을
폴크스바겐사의 딱정벌레차에 비유하곤 했다.

10년쯤이 지나 브레튼 우즈 체제가 붕괴되고 각국에서 변동환율제도의
채택이 확산되자 이 이론은 더욱 높은 평가를 받기에 이르렀다.

먼델의 선견지명은 최근 우리의 경험을 통해서도 확인된 바 있다.

97년 외환위기 직전 우리경제는 경기침체에 빠져 있었으므로 정책당국은
금융확대를 통해 경제회복을 도모하려 했다.

또 한편으로 국제수지 적자가 컸음에도 불구하고 평가절하를 피해 대미환율
을 일정수준으로 유지하려고 했었다.

그러나 국제자본이동이 자유로운 상황에서 정부가 환율을 못박아두려 한다면
금융확대정책은 아무런 경기부양 효과를 가져올 수 없어 무력한 정책수단일
뿐이라는 점을 먼델은 이미 30여년전에 꿰뚫어 보고 있었던 것이다.

노벨상위원회가 예언자적인 혜안을 지녔다고 칭찬하고 있는 먼델이 이룩한
또하나의 업적은 통화통합문제에 관한 것이다.

그는 1961년에 이미 최적통화지역(optimal currency area)에 관해 선구적인
연구를 수행했던 것이다.

그의 주장은 간단하게 풀이하자면 유럽처럼 국가간에 노동이나 자본의
이동이 원활한 지역에서는 각국의 통화를 통합해 단일화하는 것이 경제적으로
유리하다는 것이다.

38년이 지난 금년에 유럽이 마침내 유로화를 출범시켰다는 사실과 올해의
노벨 경제학상이 먼델에게 돌아간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라 할 것이다.

이 분야에 관한 그의 업적을 기리기 위한 것으로 보는 견해가 많다.

남을 앞서가는 선각자들이 종종 곤경에 처하듯이 먼델도 큰 어려움에 직면한
적이 있었다.

70년대 중반 스테그플레이션 현장, 즉 경기후퇴와 인플레가 동시에 미국
경제를 위협하고 있을 때 먼델은 포드정부에 대해 세금을 깎아야 한다는
정책권고를 한 바 있었다.

그는 이 제안을 통해 누구보다도 앞서 공급중시경제학의 처방을 내놓았던
것이다.

그러나 케인시언들이 주름잡고 있던 당시의 경제학계에서 그의 주장은
웃음거리가 되고 말았고 과거의 업적마저 폄하되기도 해서 그에 대한 평가가
크게 떨어졌다.

1년도 채 안돼 그의 주장이 옳았음이 증명되었고 그후 레이건 정부에서는
공급중시경제학이 활보하였지만 그에 대한 명예회복은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하였다.

노벨상 수상이 이만큼 늦어진 원인은 상당부분 이에 연유한다고 보는
학자들도 있다.

이러한 먼델이 수상소식을 접한지 며칠 후 어느 통신사와의 인터뷰에서
향후 미국경제의 성장둔화와 국제금융시장의 불안 및 침체가능성을 전망하고
나서서 걱정이다.

물론 그도 신이 아닌 이상 항상 앞일을 정확하게 맞힐 수는 없을 것이며
특히 최근에는 다소 엉뚱한 주장도 곧잘 한다는 지적들도 있기는 하다.

그러나 과거의 업적과 선견지명을 감안한다면 우리로서는 그의 전망을
신중하게 받아들이고 대비책을 서두르는 것이 올바른 선택일 것으로 생각
된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10월 27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