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행정부와 의회가 지난 22일 은행 증권 보험 등 금융부문간 진입장벽
철폐를 골자로 하는 은행법 개정안에 합의한 것은 상징적인 의미가 큰 사건
이다.

이십수년 전부터 금융부문간 진입장벽을 철폐하려는 시도가 끊임없이
있었지만 미국 상하양원이 정식으로 은행법 개정내용에 구체적으로 합의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기 때문이다.

이로써 1933년에 제정돼 금융기관간 영업범위를 엄격하게 제한해온 글래스
-스티걸법과 1956년의 은행지주회사법은 역사의 무대에서 사라지게 됐다.

이번 은행법 개정합의가 미국내외에 미칠 영향은 엄청나다.

미국에서만 지난 2년간 성사된 금융기관간 인수.합병 규모가 3천8백20억달러
나 되다보니 당장 법적 규제를 피하기 위한 비용의 절감만 해도 상당한
금액이 될 것 같다.

또한 다양한 금융서비스를 한곳에서 일괄 취급하는 "금융슈퍼마켓"이
출현해 이른바 "원스톱 서비스"가 가능해질 것이다.

그 결과 금융기관들은 치열한 경쟁을 통해 업무효율이 향상될 것이며 경쟁
에서 탈락한 금융기관들은 파산하거나 인수.합병될 수밖에 없다.

또한 소비자들은 선택의 폭이 넓어지고 불필요한 비용을 절감할 수 있게
된다.

이렇게 금융산업이 재편되는 과정에서 자칫 지난 80년대 저축대부조합들이
수백개나 파산한 것과 같은 혼란이 재발할 수도 있다는 점에 유의해야 할
것이다.

유럽이나 일본 등 다른 선진국 금융기관들도 닥쳐올 경쟁에 대비해 인수.
합병을 통한 대형화를 이미 여러건 성사시킨 것도 같은 맥락이다.

우리나라 은행들도 지난해 인수.합병을 단행했으며 겸업주의를 통한
유니버셜 뱅킹을 지향하고 있기는 하다.

하지만 인수.합병 규모가 작은 것은 말할 것도 없고 합병동기도 대형화를
통한 효율향상 보다는 부실채권 정리를 위한 "물타기"에 급급하다는 인상이
짙다.

특히 영역구분이 완화된 틈을 타서 계열 금융기관간 내부거래를 통해 분식
결산을 하는 등의 편법.탈법행위가 벌써 드러났다는 사실에 유의해야 한다.

이같은 부작용을 예방하자면 먼저 금융기관 임직원들이 스스로 도덕적 위험
(모랄해저드)을 저지르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그리고 금융기관들은 임직원들의 각종 편법.탈법행위를 예방하기 위한
내부통제장치를 철저히 점검해야 한다.

끝으로 금융당국은 금융감독을 한층 강화해야 할 것이다.

오랜 진통 끝에 은행.증권.보험감독원을 지난해초 금융감독원으로 통합한
명분도 겸업주의 추세에 발맞춰 금융감독을 효율화하겠다는 것이었는데
아직까지는 감독통합의 시너지효과를 보지 못하는 것 같아 안타깝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10월 26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