셰익스피어 희곡의 감흥은 그것이 세상에 나온지 4백년이 흘러도 변함이
없다.

셰익스피어의 4대 희극에 들어가는 "한 여름밤의 꿈(The Midsummer Night''s
Dream)"은 무성영화시대부터 스크린에 옮겨져 영화로도 성가를 올린 명작이다

마이클 호프만이 감독한 최신작은 영화화된 8번째 작품인데 케빈 클라인,
미셸 파이퍼, 소피 마르소등 배역도 비교적 탄탄하다.

셰익스피어 희곡을 소재로 한 영화의 진미는 뭐니 뭐니해도 극중 대사에
있다.

"한 여름밤-"에도 원전에 나오는 주옥같은 대사들이 많이 등장하지만
불행히도 번역의 한계때문에 자막에 의존해야 하는 관객들은 그 맛을 제대로
느끼기 어렵다.

총알처럼 쏟아지는 말들을 일일히 번역해서 보이자니 스크린회전이 너무
빠르고 자막을 소화할 화면이 모자란다.

가뜩이나 읽는 것을 싫어하는 현대인에 온통 자막으로 채워진 스크린을
보인다면 관객들이 비명을 지를테니 흥행을 위해서도 대충 전달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비 영어권의 관객을 의식해서 인지 몰라도 이 영화는 르네상스풍의 영상미와
함께 감미로운 선율로 가득차 있다.

전편에 걸쳐 멘델스존의 음악과 오페라 아리아로 고전취향의 팬들을 사로
잡는다.

배경 자체가 숲과 요정 등 환상적인 요소가 많은 데다가 테마까지 선남선녀
의 사랑에 초점이 잡혀 있으니 그럴만도 하다.

멘델스존의 "한여름 밤의 꿈" 서곡은 이 영화를 타이틀을 봐서도 당연히
들어가야 할 음악이다.

극중에 "사랑의 묘약"이 등장하니 같은 이름의 아리아곡을 들려주지 않을
수 없다.

스토리는 이미 끝나고 제작-출연진을 소개하는 마무리 화면에서 필요 이상
으로 시간을 끌며 음악을 들려주는데 음악을 좋아하는 관객이라면 서둘러
자리를 뜨지 않는 것이 좋다.

폭력과 섹스가 아니면 괴기와 스릴이 넘치지 않고선 외면당하기 십상인
요즘같은 관객풍토에서 19세기풍의 로맨틱 코미디가 화려한 스태프를
동원하여 대형 스크린으로 제작된 것이 신기하기만 하다.

20세기 폭스사가 밑질 각오로 문화사업을 벌인 것일까?

하긴 이 작품의 원작자를 소재로 한 16세기풍의 "셰익스피어 인 러브"가
국내에서도 많은 관객을 모은 것을 생각하면 그렇게 고상한(?) 의도로만
해석할 것도 아니다.

아카데미상 수상작이 아니었다면 그만한 인기를 누리기도 어려웠겠지만
셰익스피어관련 영화가 연타로 등장한 것은 어떤 시사점을 느끼게 한다.

"한여름밤-"의 감미로운 선율은 요란한 총소리와 헤비 메탈 음향으로
길들여진 영화팬들의 귀를 정화시켜 주는 요소가 있다.

말만 요란한 숲속의 연인들 모습은 농염한 베드 신에 익숙해진 현대 관객
들에겐 "웬 아담과 이브인가" 싶겠지만 태고적 사랑을 구경하는 재미도 있다.

요정 세계와 인간 세계의 교차가 매끈하지 못해 아쉽지만 유령영화의
으시시한 괴기감과 비교되는 색다른 맛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영화보는 재미엔 번개같은 속도감, 아슬아슬한 스릴, 소름돋는 공포감 등이
전부가 아니듯이 말이다.

스크린마다 섹스와 폭력이 난무하는 이 풍진세상에서 대문호와 대작곡가의
체취를 느낄 있다면 그것도 유쾌한 일이 아닌가.

< 편집위원 jsrim@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10월 8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