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은 살진 사랑의 계절이다.

극장가에도 사랑의 열매가 탐스럽다.

"라이브 플래쉬" "라버 앤 러버" "사랑이 지나간 자리" 등 사랑을 주제로
한 3편의 영화가 주말 개봉된다.

색깔은 제각각이다.

실타래 같이 얽혀 관계하는 현대인의 사랑, 우연한 일탈에서 눈뜨는 중년의
사랑, 그리고 따뜻한 가족애다.

"라이브 플래쉬"는 올 칸 영화제에서 "내 어머니의 모든 것"으로 감독상을
수상한 스페인의 거장감독 페드로 알마도바르의 신작이다.

별볼일 없는 젊은이를 포함한 5명의 남녀가 뒤엉켜 내는 사랑과 욕망,
운명의 변주곡이다.

비상계엄이 떨어진 70년 겨울 스페인의 마드리드.

병원으로 향하던 버스안에서 빅토르(리베르토 라발)가 태어난다.

억눌린 사회는 그를 축복하느라 떠들썩하다.

20년 뒤.

건장한 청년으로 자란 빅토르가 거리에서 우연히 만나 정을 통한 엘레나
(프란체스카 네리)의 집을 찾아 들어온다.

빅토르는 자신을 기억조차 하지 못하는 엘레나와 다투고 들이닥친 두 경찰관
다비드(하비에르 바르뎀) 산초(호세 산초)와 대치한다.

그 과정에서 울린 한발의 총성으로 이들의 존재는 서로의 삶속에 끼어들고
남모를 비밀이 하나씩 드러난다.

영화는 이들의 만남을 가능케 한 3가지 우연에 의해 추동력을 얻는다.

그 속에 담아낸 사랑에 대한 욕망과 집착, 성취와 좌절의 아픈 초상이
오롯하다.

알베르토 이글레시아스의 음악이 매혹적이다.

"라버 앤 러버"는 또 한편의 "델마와 루이스"다.

델마와 루이스에서 지나 데이비스와 열연했던 수잔 서랜든의 1인극이기도
하다.

27살 연하의 은행강도에 인질로 붙잡힌 50대 아줌마의 참사랑 찾기다.

목사부인으로서의 틀에 박힌 삶에 지루해하던 샬롯(수잔 서랜든)은 일상에서
의 탈출을 꿈꾼다.

그 시발점인 동네은행에서 난데없이 어설픈 강도 제이크(스티븐 도프)의
인질이 된다.

자신들이 살아온 삶에서 벗어나고 싶어하는 두사람.

경찰의 눈을 피해 샬롯은 과거를 뒤로하고, 제이크는 또다시 과거를 찾아
미래로 향한다.

낯선 세계로의 발길은 사랑을 낳는가.

샬롯은 제이크와 티격태격하며 여자로서의 사랑과 인생에 새로이 눈뜬다.

그런 샬롯을 바라보는 제이크의 표정은 내내 "뭐 이런 아줌마가 다 있냐"는
투지만 결국 여지껏 느껴보지 못했던 따뜻한 모성에 눈물을 그렁인다.

영화의 결말은 "델마와 루이스"와 정반대다.

두 사람이 파국으로 치닫지 않고 서로의 자리를 되찾아 가는 것으로 매듭
짓는다.

거기에 담긴 푸근함이 요즘 영화에서 보기 드문 개운한 뒷맛을 남긴다.

"사랑이 지나간 자리"는 가족사랑을 담았다.

세살짜리 어린애를 잃어버린 가족의 아픔, 아홉살이 되어 찾은 아이와의
서먹한 만남과 화해를 아이편에 선 관심과 사랑으로 녹였다.

사진작가인 베스(미셸 파이퍼)는 북적대는 동창회장에서 막내 벤을 잃는다.

남편 팻(트릿 윌리엄스)은 남은 아이들에게 사랑을 쏟자며 설득하지만
베스의 상처는 깊어간다.

9년후 훌쩍 자란 벤을 찾는다.

그러나 벤과 가족간의 사이는 좀처럼 좁혀지지 않는다.

영화는 베스가족뿐만 아니라 사회전체의 관심을 비추며 가족의 의미를
되새기게 한다.

가족이란 단어에 담긴 덕목을 예쁘게 빚어낸 데는 미셀 파이퍼, 트릿
윌리엄스, 우피 골드버그(경찰)외에도 장남으로 나온 조나단 잭슨의 역할이
크다.

< 김재일 기자 kjil@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10월 8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