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인세 감면 혜택 등을 앞세운 정부의 적극적인 외자유치 정책은 국내
산업계와 금융계에 지각변동을 일으켰다.

그렇지 않아도 원화가치 하락으로 한국기업의 가격이 바닥에 떨어진 판에
정부가 각종 혜택까지 주니 외국인투자자들로서는 더없는 호기가 온 셈이다.

외국언론에서는 "한국이 기업 염가판매(fire sale)에 나섰다"고 표현하기도
했다.

외자유치의 물꼬는 작년 3월 대상그룹이 라이신사업을 독일 바스프사에
넘기면서 본격적으로 터지기 시작했다.

바스프는 한화바스프와 효성바스프도 잇따라 인수했다.

프레드 바움 가르트너 바스프회장은 "앞으로 조금만 더 투자를 늘리면
30대그룹에 진입할 수 있을 것"이라고 장담하고 있을 정도다.

외자유입에 의한 지각변동은 제지업에서 가장 크게 일어났다.

98년 전체 외국인투자의 18.6%, 제조업투자의 28.7%를 제지업이 차지했다.

P&G의 쌍용제지 인수를 시작으로 보워터, 노스케스코그 등이 앞다퉈 진출
했다.

그 결과 현재 신문용지 시장의 73%를 외자계가 점유하고 있다.

화학업종중 카본블랙사업도 외국인투자기업의 점유율이 70%로 확대됐다.

독일 데구사가 LG화학의 카본블랙사업부문을, 콜럼비아 케미컬사(미국)는
금호석유화학의 카본블랙사업부문을 사들였다.

석고보드,유리 등 요업분야에는 프랑스기업들이 대거 진출했다.

라파즈사가 동부석고보드와 벽산석고보드, 베트로텍스금융사는
한국베트로텍스를 매입했다.

위스키 시장도 외국기업들의 무대가 됐다.

진로는 위스키 부문을 "밸런타인" 위스키로 유명한 영국 얼라이드 도맥에
매각했다.

앞서 두산도 위스키 부문을 시그램에 매각해 국내시장의 80%를 외국사가
장악하게 됐다.

전기.전자업종에서는 미국계 기업이 강세다.

CIL사(미 ATI사의 케이만군도 자회사)는 아남반도체 광주공장, 페어차일드
반도체사는 삼성전자 부천공장, 모토로라는 어필텔레콤을 각각 인수했다.

외국자본은 금융부문에도 밀려들어 왔다.

최근 뉴브릿지에 경영권이 넘어간 제일은행 외에도 외환(코메르츠), 국민
(골드만삭스), 한미은행(BOA) 등은 제1대주주가 외국인이다.

이중 외환, 한미은행은 외국인 임원이 선임돼 경영에 깊숙이 관여하고 있다.

주택(ING), 하나은행(IFC)에도 외국인이 2대주주로 경영에 간접참여하고
있다.

증권계도 외국인의 자본참여나 경영참여가 급진전됐다.

대유는 리젠트 퍼시픽, 서울은 퀀텀 이머징, 쌍용은 H&Q를 거쳐 체이스
맨해튼에 경영권이 넘어갔다.

조흥증권도 대만 KOO그룹과 매각협상을 진행중이다.

한진증권 경영에는 푸르덴셜이 참여하고 있다.

외국 생보사들도 국내시장 공략을 위해 직접 진출을 도모하고 있다.

뉴욕생명은 국민생명 인수를 위한 양해각서(MOU)를 교환했다.

독일계 알리안츠는 제일생명을 인수해 국내진출 교두보를 확보했다.

외국자본이 이처럼 "바이 코리아"에 나서고 있는 데에는 나름대로의 계산이
있다.

한국을 수출지향적 생산거점으로 삼겠다는 전략인 것이다.

삼성중공업의 건설장비부문을 인수해 볼보건설장비로 이름을 바꾼 볼보그룹
이 대표적이다.

이 회사는 "한국을 세계시장 진출 거점으로 육성하겠다"며 스웨덴과 독일에
있던 건설장비 공장을 아예 폐쇄키로 했다.

건설장비에 관한한 볼보의 본사는 한국으로 이전한 셈이다.

이밖에 보워터그룹도 한라펄프를 인수해 중국, 동남아 시장 진출 거점을
확보했고 다우코닝은 합작기업인 LG-다우폴리카보네이트를 아시아 시장
거점화한다는 전략이다.

< 임혁 기자 limhyuck@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10월 5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