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산업/금융계 지각변동 ]

흥농종묘, OB맥주, 제일생명, 제일은행...

얼른 연관성이 안떠오르는 이름들이다.

하지만 중요한 공통점이 있다.

IMF체제 이후 외국인에게 경영권이 넘어간 회사들이다.

정부는 IMF 체제에 들어간 이후 M&A 시장의 빗장을 활짝 걷어올렸다.

뿐만아니라 외국인투자촉진법을 제정, 외국인투자기업에 대해 5년간 법인세
감면 등 파격적인 지원조치도 제공했다.

당장의 목적은 외자를 끌어들여 부족한 외환을 메우자는 것이었다.

실제로 작년 한햇동안 88억5천만달러(신고기준)의 외자가 유치됐다.

아시아 국가중 투자유치 순위도 9위에서 4위로 껑충 뛰었다.

외자유치에는 또다른 목적도 있다.

"구조조정에 따른 생산위축, 실업증가 등 산업공동화에 대한 완충역할이
필요했다. 또 기업과 금융기관의 재무구조도 개선되는 효과도 겨냥했다"
(정덕구 산업자원부 장관)

이런 하드웨어적 효과 외에 소프트웨어 측면에서의 효과도 있다.

"자본이 이전될 때에는 선진기술과 경영기법도 수반한다"(조원동 재정경제부
정책심의관)는 것이다.

조 심의관은 대표적 사례로 스웨덴 볼보그룹이 삼성그룹으로부터 인수한
볼보건설기계코리아(구 삼성중공업 건설기계부문)를 꼽는다.

정부가 헐값매각 시비를 감수해가며 제일은행을 뉴브릿지에 넘긴 것도 이런
목적에서라는 설명이다.

정부는 이같은 긍정적 측면에 촛점을 맞춰 앞으로도 외자유치를 가속화
한다는 방침이다.

김대중 대통령은 연초에 외국기업 대표들을 모아 놓고 "외국인투자 규모를
올해는 1백50억달러, 2002년에는 2백억달러로 끌어올려 세계 10대 투자유치국
이 되겠다"고 선언하기도 했다.

이는 한국의 외국인투자비중이 GDP 대비 6.7%로 싱가포르(70%), 말레이시아
(50%) 등 경쟁국은 물론 투자환경이 나쁘다는 중국(25%)보다도 턱없이 낮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그러나 최근에는 정부의 외자유치 정책에 대해 재검토를 요구하는 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조급한 외자유치로 인해 한국의 기업인수합병 시장이 전형적인 구매자시장
(buyer"s market)이 되고 말았다"(성균관대 박광작 교수)는 것이다.

실제로 "막바지까지 가서도 값을 후려치는 외국자본의 요구에 속을 태웠다"
는 기업들의 경험담은 비일비재하다.

연세대 박영렬 교수는 이같은 헐값매각의 폐단을 다국적 기업의 유동성
(mobility)과 교섭력(bargaining power)의 관계로 설명한다.

"다국적 기업은 목표한 투자수익률이 달성되고 나면 진출국 정부와의 추가
교섭때 사업철수를 협상의 무기로 삼는 경향이 있다. 따라서 헐값에 인수할
수록 이런 교섭력의 남용 가능성이 커진다"는 지적이다.

헐값매각 시비 외에 외자유치가 산업정책에 대한 장기적 비전도 없이
주먹구구식으로 이루어지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이 점은 주무부처인 산업자원부도 인정을 하는 부분이다.

산자부는 "98년 외자유치정책 실적평가"자료에서 "98년에는 적극적 개방
정책으로의 과감한 전환은 이루어졌으나 고용창출.기술이전.수출증대.지역
개발 등 국민경제적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한 전략적 고려는 불충분했다"고
시인했다.

또 산업구조나 산업정책방향과의 적합성에서 벗어난 경우도 많은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공정거래정책이 좋은 사례다.

외국인투자를 통해 경쟁을 제고해야 하는데 반대로 외국기업에 의한 독과점
시장이 형성된 사례가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

외자기업의 시장점유율이 70%를 넘어선 제지를 비롯, 의약, 종묘 등이 그
대표적인 업종이다.

외자유치업종이 미래의 고부가가치 산업보다는 재래산업에 편중돼 있는
점도 문제로 지적되곤 한다.

정보통신, 의약, 생명공학, 문화산업 등 고부가가치 창출신산업에 대한
외국인투자 촉진전략도 미흡했다는 분석이다.

이밖에 외자유치가 신규투자보다는 기존기업의 인수 위주로 이루어지고
있는 점도 비판의 대상이다.

고용이나 선진기술도입 효과면에서 기존기업의 인수는 현상유지에 불과하다.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하고 선진기술이 도입되려면 신규투자를 적극 유치
해야 하는데 이에대한 전략적 고려가 아쉽다는 지적이다.

그동안의 외자유치 정책에 대한 이같은 비판은 국회에서도 도마위에 올랐다.

이에대해 강봉균 재정경제부 장관은 "이제는 우리의 외환사정이 숨을
돌렸다"며 "앞으로는 외국돈을 유치하더라도 조건을 따져서 유치할 것이고
우리가 외국에게 주식을 양도해서 경영권을 넘길 경우에도 조건을 따져서
하겠다"고 답변하기도 했다.

정부도 조급한 외자유치 정책의 폐단을 인식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 임혁 기자 limhyuck@ >

[ 외자유치정책의 득실비교 ]

<> 긍정적 측면

- 신속한 외화유동성 개선
. 98년중 50억달러(집행 기준) 유입
- 국가신인도 개선
- 국내기업 재무구조 개선
. 삼성중공업 부채비율 760%->216%
. 한솔제지 부채비율 380%->212%
- 선진기술/경영기법 도입 촉진
. 결재단계 축소, 성과급도입 등
- 구조조정에 따른 산업공동화 완충

<> 부정적 측면

- 헐값 매각으로 인한 국부유출 시비
. 제일은행, 공적자급 7조 투입후 5천억원에 매각
. 골드만삭스, 국민은행 주식평가익 1억달러 등
- 외자기업에 의한 시장독과점화
. 제지산업 점유율 73%
. 위스키시장 80% 장악 등
- 원부자재 조달선 변경시 부품/협력업체 타격 가능성
- 첨단산업 유치실적 미흡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10월 5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