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를 가진 선주와 염전 경영자로 남부러울 게 없었던 차영균(78세)씨.

변호사 서기로 출발해 돈을 모아 "지역유지"로 대접받았다.

넉넉한 재산으로 남을 돕는 데도 인색하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은 부인과 함께 서울 홍은동의 월세 5만원짜리 단칸방에서
"생존"을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38세의 장남이 있어 생활보호자 지정도 받지 못한다.

아들도 어려워 도움을 받을 처지가 못된다.

유일한 "생명줄"은 인근 교회에서 한달에 5만원씩 주는 구호비가 전부.

그나마 월세로 내고 나면 남는 것도 없다.

한 사회단체가 매일 주는 도시락이 없으면 사는 것 자체가 문제다.

그 많던 재산은 첨단농업을 짓겠다며 뛰어들어 날려 버렸다.

보증금 1백만원의 단칸 방만 남았다.

차씨는 생활보호 대상자로 지정받고 영구임대주택에 입주하는 것이 마지막
소원이다.

아들 처지도 뻔한데 "규정" 때문에 도움을 받지 못한다는 게 차씨의
하소연이다.

공직자의 "사모님"으로 남부러울 것이 없었던 최용선(88) 할머니.

의지할 남편과 하나 뿐이던 자식도 먼저 떠났다.

재산이 있었지만 사회단체에 넘겼다.

자신의 여생을 돌보아 준다는 조건이었다.

하지만 "사기"를 당했다.

지금은 보일러실을 개조한 2층 단칸방에서 힘겹게 살고 있다.

유일한 수입은 정부에서 지원하는 월 10여만원의 생활보호비다.

최씨는 "남을 도와줬는데 이제와서 돌보는 사람이 없어. 돈 함부로 쓰지마"
라고 말했다.

가난.

우리 노인문제중 가장 풀기 어려운 숙제다.

소득이 보장되는 일자리가 있을 턱이 없고 정부에서 주는 돈도 시원치
않다.

먹거리를 해결하는 것 조차 아슬아슬한 경우가 허다할 정도다.

자식들이라도 든든하면 다행이지만 아들 딸에게 손을 벌리는 것도 여의치
않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조사에 따르면 한달에 20만원도 안되는 용돈으로
생활하는 노인이 10명중 9명(89.3%)이다.

절반이 넘는 56.3%의 노인이 10만원 미만의 용돈으로 한달을 지낸다.

용돈이 아예 없다는 노인도 10.7% 였다.

65세 이상 노인의 71%는 수입이 되는 일을 갖고 있지 않다.

남의 도움에 의지해 살고 있는 것이다.

40.5%의 노인은 자녀들의 보조에 의지하고 있다.

이러니 여가나 사회활동은 엄두도 내지 못한다.

물론 젊을 때 노후를 대비한 노인들도 적지 않다.

재산도 물려주지 않고 꼭 쥐고 있어 자식들에게 제대로 대접을 받고 있기도
하다.

이훈재(69)씨가 그 경우.

두명의 며느리로 부터 극진한 대접을 받고 있다.

회사 다닐 때 들어뒀던 연금보험을 매달 받고 있어 손자손녀들에게 "인사"
를 받기에도 어려움이 없다.

이씨는 20여년전에 사뒀던 양재동 인근의 땅 문서를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다.

재산은 자신이 죽은 뒤에 자식들이 알아서 쓸 일이다.

최근에는 다이아몬드 반지를 만들어 마음에 드는 며느리에게 주겠다고
제안했다.

두 며느리에게 모두 줄 예정이지만 말은 그렇게 해 놓았다고 한다.

이씨는 "젊은 시절에 아껴서 모아두라"고 충고한다.

정부가 해주면 얼마나 해 주겠느냐는 것이다.

자식들도 돈있는 부모를 잘 모신다는 게 이씨의 지론이다.

이씨는 "혼자 사는 노인들의 경우 정부가 지나치게 원칙을 고집할 것이
아니라 살아갈 수 있도록 신축적으로 도와주어야 한다"고 지적한다.

< 김도경 기자 infofest@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9월 29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