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동성 < 서울대 교수 / 국제지역원장 >

얼마전 창업으로 성공한 경영자 한 사람을 학교로 초청해 경험담을 듣는
시간을 가졌다.

이 강의엔 피자를 한국에 도입해 한국인의 입맛을 바꾸어 놓을 정도로
성공을 거둔 "피자헛"의 성신제 사장이 초대됐다.

"저는 개인적으로 무척 어려운 상황에서 피자헛을 일으켰고 모든 것을
여기에 쏟아부었습니다. 몇차례 아찔할 정도로 어려운 일들이 있었고 그
때마다 집사람이 헌신적으로 도와주어 이를 극복할 수 있었습니다. 그 결과
사업이 크게 번창했고 큰 돈을 벌기도 했습니다. 이제 저는 새로운 외식사업
을 시작했습니다. 그 이유는 이 사업에 대한 매력 때문이기도 하지만 피자헛
을 통해 이룬 성공이 결코 운이 아니라 노력에 의해 쟁취한 결과라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만약 제가 새로운 사업에서 다시 한번 성공
한다면 어느 누구도 저를 단순히 운이 좋은 사람으로 치부하진 않으리라
생각합니다"

그 다음주 학생들은 성 사장의 강의내용을 갖고 토론을 벌였다.

많은 학생들이 그의 성공을 능력 때문으로 보았다.

"성신제 사장은 일에 미친 사람이다" "그는 어려운 환경을 극복하기 위해서
처절한 투쟁을 했고 이것이 성공의 원인이 됐다" "그는 장인정신의 소유자다"
"아무도 피자 사업의 가능성을 믿지 않을 때 성 사장이 이 사업에 뛰어들었다
는 것은 바로 미래에 대한 그의 능력이 뛰어나다는 증거 아닌가"

그러나 어떤 학생은 그의 성공을 운으로 돌렸다.

"그가 피자 음식점으로 성공한 것을 노력 때문이라고 보는 것엔 어폐가
있다. 피자는 한국뿐 아니라 세계 어느나라에서도 인기가 있지 않은가.
그가 피자사업으로 성공한 이유는 운이 좋아서이지 그가 피자 소비자를
새롭게 만들어냈기 때문은 아니다"

학생들 사이에서 논쟁은 계속됐다.

이 과정에서 학생들은 운과 능력에 대한 자신들의 생각을 서로 교환할 수
있었다.

운이란 도대체 무엇인가.

경영자에게 운이란 어떤 의미를 갖는가.

경영자가 성공했을 때 그것이 운의 결과인가 아니면 능력의 결과인가.

이 물음에 대한 학생들의 견해는 다음과 같았다.

"운은 요행과 행운으로 구별된다. 요행이란 그때 그때 확률적으로 생겨나는
것이다. 한 예로 복권에 당첨되는 경우를 들 수 있다. 반면 행운이란 기회가
왔을 때 그것을 자기 것으로 잡을 수 있는 준비가 돼 있는 상태에서만 가능한
것이다"

"결국 요행과 행운의 차이는 환경을 얼마나 제어할 수 있느냐의 문제다.
제어할 수 없는 요소에 의해 지배되는 것은 요행이지만 자기가 스스로 제어
하고 찾아 나갈 수 있을 때는 행운이라고 부를 수 있다. 따라서 우리가
주제로 삼아야 할 것은 요행이 아니라 행운이다"

"우리는 설명이 잘 안되거나 이해가 안가는 부분이 있을 때 흔히 행운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이것은 외부에서 피상적으로 본 시각이다. 실제로 그 내부를
들여다보고 사물의 이치를 따져 보면 이 세상에 행운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한 예로 한강의 기적이니 라인강의 기적이니 하는 말은 바깥 사람들이 한국
사람과 독일사람이 얼마나 열심히 노력했으며 어떤 성공 메커니즘이 있는지
모르고 단지 겉으로만 본 결과를 얘기한 것이다. 이 세상에는 행운에만
맡겨서 되는 것은 없으며 운의 탓으로만 돌리려는 자세 또한 적절치 못하다"

"세상의 모든 것은 설명될 수 있으며 운이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은 어떻게
보면 우리가 세상과 미래에 대해 너무 오만한 자세를 취하는 것이 아닌가.
행운이나 운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노력하지 않아도 된다는 뜻이 아니라
아무리 노력을 해도 사람의 힘으로는 안되는 것이 있기 때문에 좀더 겸허한
자세를 갖는 것이 필요하다는 의미다. 따라서 노력했는데도 제대로 성과가
나오지 않을 경우엔 다른 사람의 탓으로 돌리지 말고 그대로 받아들인다는
관점에서 운의 의미를 생각할 필요가 있다"

우선적으로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은 우리가 하는 일의 많은 부분들이 우리의
능력이나 노력에 의해서 결정되고 또한 그러한 요인들로 설명되어 질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거의 모든 사람들이 인정할 수밖에 없는 절대적 명제이다.

그런데 현실적으로 대부분의 일엔 그러한 요인들만으론 설명이 어려운
부분이 분명 존재한다.

그렇기 때문에 그 나머지 부분을 두고 흔히들 운이 작용한 것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그렇지만 설명할 수 없는 부분을 모두 운의 탓으로 돌려버리는 것이 타당한
지에 대해선 조금 더 생각을 해봐야 하겠다.

우리는 그것을 인간의 설명력이 부족한 때문이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즉 만약 신과 같은 절대자가 존재한다면 그는 인간의 모든 일을 설명할 수
있을 것이고 또 인간의 설명력이 그러한 경지에 가까워짐에 따라 점점 더
많은 부분을 설명할 수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관점에선 운이라는 것은 따로 존재하지 않으며 모든 일은
우리가 하기에 따라서 결정될 수 있는 것이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9월 28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