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기술분야 정부출연연구기관에 값비싼 연구장비가 상당량 방치돼 있다는
기획예산처의 실태조사는 충격적이다.

과학기술연구원 전자통신연구원 생산기술연구원 등 21개 출연연구기관은
공공및 기초기술연구를 이끌고 있는 국가연구소다.

이 곳에서 보유하고 있는 1억원이 넘는 고가의 연구장비 1천5백여종이
낮잠을 자고 있다는 조사보고는 국가연구개발사업에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입증한다.

해당분야의 교수와 민간전문가가 현장방문으로 진행한 이번 조사에서 밝혀낸
그릇된 이용사례중에는 어이없는 것들이 많다.

연구가 끝났는데도 장비를 구입해 박스채 풀지않고 보관하고 있거나, 같은
연구소내에 있으면서도 센터가 다르다고 센터별로 장비를 중복도입한 경우,
장비를 사다놓고는 관리및 보수요원을 고용하지 못해서 장비를 놀린 경우도
있다.

하지만 선진국에 비해 뒤떨어진 연구환경에서 그래도 현장을 지키고 있는
우리의 고급과학두뇌들이 지각없이 연구비를 이같이 방만하게 썼다고
보고싶진 않다.

연구용이라지만 고가의 장비를 구입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또 연구기관에서는 인력에 비해 연구비가 항상 부족하다고 여긴다.

실제로 많은 연구책임자가 연구비를 조달하려고 기업등으로 프로젝트 수주에
나서고 있다.

이를 감안할때 고가연구장비의 활용미흡은 정부연구사업수행의 문제점이
낳은 부산물일 가능성이 크다.

자주 바뀌는 과학기술정책과 이에따른 사업변경은 여러해가 걸리는
장기과제들을 드물게 만들었다.

그러다보면 장기과제가 중간에 사라질 처지에 놓여있는 상태인데 이미
발주한 장비는 도착하는 사례도 나온다.

또 연구소통폐합, 구조조정 등으로 이합집산이 잦다보면 연구진별로
기자재를 확보하려는 노력도 나타난다.

몇년전 지상에 쏘아올려져 아직까지 제대로 활용이 않되고 있는 무궁화2호
위성을 놓고 어느누가 소유기관만을 탓 할 수있는가.

유휴 고가연구장비중에 이것과 처지가 유사한 것들은 없는지 살피고 그
원인을 개선하는 것이 연구현장에 활력을 더 주지 않을까.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9월 22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