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화소양이라는 말이 있다.

''신발을 신은 채 발바닥을 긁는다''뜻이다.

간지러운 곳을 직접 긁지 못하니까 시원할 리가 없다.

오히려 감질만 더 난다.

근본을 놔두고 곁다리만 건드리는 것은 아무런 효과가 없다.

자칫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도 못막게 되는 결과를 초래하기 십상이다.

금융감독위원회가 지난 18일 발표한 "금융시장 불안요인 해소대책"에 대한
전반적인 평가도 바로 격화소양이라는 말로 요약할 수 있다.

"11월금융대란설"이 확산될 정도로 금융시장이 불안해진 근본적인 원인에
대한 해법이 구체적으로 제시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상황에 여유가 있을 때는 단계적이고 점진적인 접근이 효과적일 수 있다.

그러나 이같은 접근은 지난 두달 동안 그다지 효과가 없다는 것이 이미
드러났다.

정부는 지난 7월19일 대우그룹 문제가 불거져 나온 이후 여러차례
금융시장안정대책을 발표했다.

은행과 투신사로 하여금 대우그룹에 4조원을 새로 지원토록 하고(7월26일),
공사채형 수익증권에 대한 환매를 제한(8월13일)했다.

그때마다 "이번 대책으로 금융시장은 틀림없이 안정될 것"이라고 호언장담
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그동안 주가는 떨어지고 금리는 폭등했다.

이렇게 해서 공중으로 바람과 함께 사라진 돈이 35조원을 넘는다는
분석이다.

금감위는 이번에도 금융시장은 안정될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금융.채권전문가들이 실효성에 대해 의문표를 붙여도 그다지 신경쓰지
않는듯한 표정을 애써 짓는다.

첫단추가 잘못 끼워져 있으니까 다시 끼어야 한다고 하는데도 고집을
피우다 보니 무리수가 자꾸 등장하는 형국이다.

경제정책이 효과를 내느냐 못 내느냐는 시장의 이해와 협조를 얻을 수
있느냐의 여부에 달려 있다.

경제장관들이 대책을 마련하기 위해 함께 모여 사진을 찍는 전시효과만으로
는 소기의 성과를 기대할 수 없다.

태산명동서일필처럼, 뭔가 특단의 대책이라도 내놓을 듯이 잔뜩 기대감을
높였다가 내놓는 대책이 재탕 삼탕이라면 정부에 대한 신뢰성만 떨어뜨릴
뿐이다.

정책에 대한 믿음이 떨어지면 치러야 할 비용은 더욱 커지게 된다.

늑대가 왔다고 동네사람들을 속이는 것에 재미붙였던 양치기 목동이 결국은
양을 늑대에게 잡아먹히게 하고 말았다는 이솝우화에도 귀를 기울여야 할
것이다.

< 홍찬선 기자 hcs@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9월 20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