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들 놀 때 바삐 뛰어야 하고 낮과 밤을 바꾸어가며 일해야하지만 자부심과
긍지로 버텼습니다. 기관사가 천직이라 생각하고 앞만 보고 달렸지요"

철도 창설 1백주년을 맞는 해에 1백만km 무사고기록을 달성한 대전기관차
사무소 소속 박평배(52) 기관사.

그는 지구를 무려 24바퀴나 도는 아득한 거리를 달리는 동안 오직 승객의
안전만을 생각했다고 한다.

물론 아찔한 순간을 수없이 겪었다.

하지만 이같은 사명감이 있기에 19년 근속기간을 무사고로 채울 수 있었다.

"한번은 영동과 황간사이의 구간에서 냉동차가 철로로 전복된 사고가
있었습니다. 상황실에서는 제가 운전하는 열차는 이미 통과한 것으로 알고
뒤따라오는 열차에만 제동하라는 무전을 보내왔습니다"

다음 열차에 보내는 무전이라고 그냥 지나쳤다면 큰 사고로 이어질 뻔
했지만 그는 재빨리 급제동을 걸어 승객들을 위기의 순간에서 구해냈다.

"기관사란 오감을 모두 동원해야하는 종합예술가와 다름 없습니다. 그
정도로 힘들지만 그만큼 매력적인 직업입니다"

박씨는 서울~부산간을 1천1백번 이상 왕복 주행했다.

나머지 지역은 말할 것도 없다.

때문에 어지간한 노선은 눈을 감고도 주변 상황을 훤히 궤뚫고 있다.

또 안전운전을 위해 습관적으로 주위를 세심하게 살피다보니 기차길옆
동네사람 얼굴까지 알 정도다.

조그만 나무가 서 있는 위치까지 손바닥 들여다 보듯이 알고 있다.

충북 청원군 부강면에서 태어난 박씨는 마을 어귀를 지나는 경부선 열차를
바라보면서 기관사의 꿈을 키웠다고 한다.

"철마를 끌고 레일위를 달리는 기관사의 모습이 그렇게 멋져 보일 수가 없어
이 길을 택했다"는 그는 중학교를 마치고 곧바로 기관조사가 됐다.

다시 7~8계단을 거쳐 기관사가 되기까지 무던히도 많은 땀을 흘렸다.

무더운 여름 좁은 화차안에서 석탄을 퍼담는 일부터 한겨울 찬바람을 가르며
꽁꽁 얼어붙은 철길 위를 달리던 일까지 남들이 알지 못하는 숱한 고생을
겪었다고 회고한다.

그래서 그는 안락한 전기기관차나 디젤기관차를 몰고 갈때면 격세지감을
느낀다고 한다.

지난해 5월부터 승객들에게 기관사의 이름을 밝히는 "기관사실명제" 실시
이후 직업에 대해 더욱 보람을 느낀다며 뿌듯해 했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9월 18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