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동규 < 서울대 국문과 교수(심사위원장) >

이번 공모의 주제였던 IMF극복 주부 생활수기는 많은 고통받는 이들의
응모로 심사에 어려움이 많았다.

평범하게 살다 갑자기 불어닥친 생활의 고통은 수기라는 형식의 글 뒷면에
그대로 담겨 있어 글쓴 주부의 하루가 눈앞에 어른거려 심사하는 이들의
마음을 뜨겁게 했다.

따라서 고통을 당한 주부들의 수기라는 공통성을 바탕으로 포괄적인 가난
에서의 탈출수기보다 IMF라는 경제적 파란의 영향을 직접적으로 생활전선
에서 겪게 된 사연이 중심이 된 수기를 우선적으로 선별하고자 했다.

둘째는 비록 맞춤법이 틀리고 문장이 매끄럽지 않아도 삶의 고통을 부딪쳐
가며 겪어야 했던 생활의 이야기를 얼마나 진실하고 꾸밈없이 드러내 보여
주며, 극복의 치열한 의지가 살아 있는가에 기준을 뒀다.

이러한 기준을 거쳐 최종 심사에 올라온 수기는 25편을 넘었다.

그중 은상을 받게 된 "난파선의 선장이 되어"는 간호조무사로 일하게 된
한 주부의 고백으로 난파선의 선장이 된 솔직한 심정이 무리없이 정돈돼
있는 점이 돋보였고 "아껴쓰는 마을"은 재활용의 집인 "아껴쓰는 마을"
이라는 가게를 운영하게 된 경위보다 실제적 생활의 증거들이 받침돼 있는
생활의 정직한 기록이 돋보였다.

금상에 오른 "위기를 기회로 살린 인생"은 건설회사에 다니던 남편의
실직으로 당하게 된 어려움을 부부가 합작하여 슬기로 극복한 사연이 중심
이다.

이 사연에서 눈에 띄는 것은 남들이 보지 않는 일을 찾아 온 정성을 다해
사업으로 키워 가고 가족의 협력으로 변해 가는 과정을 가식없이 마치
과학리포트를 쓰듯이 드러내 보여주고 있다는 점이다.

끝으로 대상을 받게 된 "빵집 사장을 꿈꾸며"는 글쓴이가 아직도 고통의
굴속에 갇혀 있으면서도 멀리 손톱만큼 보이는 희망이라는 불빛을 찾아
투쟁의 불꽃을 태우고 있다는 점이 돋보였다.

일반적으로 이번 수기중에는 시련에 굴복해 비명을 지르기도 하고, 원망도
하고, 아니면 현실의 왜곡된 구조를 비판하는 내용이 많았지만 자신의
내면에 비쳐진 삶의 어려움을 그대로 보여주는 투명한 자아성찰의 내용은
드물었다.

이 수기는 이러한 자신의 내면세계를 밀도 있고 체계적으로 깔끔하게 보여
주고 있는 점이 특이했다.

그리고 빠뜨릴 수 없는 것은 고통의 시간 속에서 가족간에 겪게 되는
불만과 갈등을 장식적인 치장을 하지 않고 그대로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수기가 지닌 진실성과 고백성에 알맞은 것으로 아직 이루지 못한 꿈의
실현에 대한 간절한 소망으로 빛을 더하고 있는 것이다.

어려움에 처한 실제적 생활이 수기인 점을 생각할 때 극복이라는 말은 나은
삶에 대한 생존적 희망임을 확인하면서 수고한 모든 이들이 극복의지로
2000년을 헤쳐 갈 수 있으리라는 기대를 심사위원은 느낄수 있었다.

많은 투고에 대해 심사위원으로서 고맙게 여긴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9월 18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