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금융대란"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대책마련을 서두르고 있는 것은
다행스런 일이다.

강봉균 재경장관과 이헌재 금감위원장이 직접 나서서 "정부가 충분히 대책을
준비중이기 때문에 대란은 없을 것"이라며 자신감을 피력한 것도 적절했다고
하겠다.

정부가 검토중인 금융 대책들은 투신사에 다양한 신상품을 허용하고 은행권
에 투신상품의 판매와 채권투자를 독려하는 외에도 한은이 직접 돈을 풀어
투신사를 지원하는 등의 적극적인 방안까지 포함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수익증권 환매사태로 빚어질 파국의 가능성이나 공사채형 수익증권 잔고가
1백80조원을 넘는다는 점을 감안하면 "최대 1백조원까지 동원한다"는 정부의
각오도 평가할 만하다.

그러나 급하다고 해서 바늘 허리에 꿰어 쓸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시급한
대책일수록 해서는 안될 일이 분명히 있고 또 이를 확실히 가리는 것이야말로
"긴급"이라는 이름의 대책이 항용 초래하게 마련인 2차 혹은 3차의 더 큰
부작용을 예방하는 길이라 할 것이다.

은행 예금 증가액의 일정 부분으로 투신사가 매각하는 채권을 의무적으로
매입하도록 한다든가, 은행들에 투신상품 취급을 허용하고 투신에는 사모펀드
판매를 허용하는 등의 방안이 바로 그런 예에 해당한다고 본다.

비록 세계적인 추세가 금융산업의 겸업화를 지향하고 있다고는 하나 은행은
은행일 뿐 그 자신이 증권투자 기관은 아니다.

미국이 은행과 증권업을 엄격히 분리한 글래스-스티걸법을 대폭 완화하면서
도 굳이 자회사를 통한 겸업화쪽으로만 물꼬를 트고 있는 것도 증권시장에서
발생한 사태가 직접 은행으로 넘쳐 들어오지 않도록 하자는 고육의 정책에
다름 아니다.

증권시장은 가격의 변동성을 영업의 기초로 삼고 있지만 은행은 가격의
안정을 생명으로 삼는다는 것은 두말할 나위도 없이 분명한 일이다.

채권시장이 불안하다고 해서 예금은행으로 하여금 직접 채권시장의 안정을
책임지도록 하는 것은 경우에 따라 시장의 불안을 오히려 은행쪽으로 끌어
들일 수도 있다는 점에서 결코 옳은 방법이 아니다.

더욱이 은행을 채권시장에 내몰고 나면 정작 본업인 상업금융 업무는 그것
대로 심각하게 위축될 것이 뻔하다.

투신에 사모펀드를 허용한다는 것 역시 고객자산의 동질성을 무너뜨린다는
점에서 투자신탁제도의 근간을 위협한다고 하겠다.

굳이 채권수요처가 필요하다면 채권자문업의 활성화나 진입장벽을 대폭
허물어버리는 등의 방법이 정도라 할 것이다.

상황이 다급하다고는 하지만 원칙이 허용하는 범위내에서 대책을 수립하는
것이 옳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9월 17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