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전자업종을 하려면?

지금까지 답은 간단했다.

서부의 실리콘밸리로 가면 됐다.

하이테크산업이 밀집돼 있는 이 지역을 선택하면 모든 게 끝났다.

고도로 숙련된 풍부한 노동력, 최적의 기후조건, 거대한 시장인 아시아로의
관문..

만족스럽지 않은 게 없었다.

그러나 최근 상황이 달라졌다.

부동산값은 하늘로 치솟고 노동시장의 공급은 수요를 따라가지 못한다.

인건비가 빠르게 오른다는 얘기다.

그렇다면 다른 선택은 없을까.

이 질문에 대한 답 또한 간단하다.

미국인들은 남동부 버지니아주의 수도 리치몬드와 그 주변지역(The Great
Richmond)을 대안으로 꼽는데 주저하지 않는다.

영국 식민지시절 최초의 자치령이었던 까닭으로 "올드 도미니언(The Old
Dominion)"으로 불리는 이 지역은 때문에 요즘 서부의 실리콘 밸리에 빗댄
"실리콘 도미니언(Silicon Dominion)"이란 애칭으로 통한다.

동부 첨단산업의 메카임을 자부하는 이 지역은 최근 2가지 깜짝 놀랄 뉴스로
이를 완전히 공인 받았다.

하나는 미국 모토로라와 독일 지멘스의 합작기업인 화이트 오크 반도체가
16억달러를 들여 64메가비트 D램공장을 설립한 것.

다른 하나는 모토로라가 이곳 웨스트 크리크 반도체공장을 30억달러를 들여
증설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두가지 뉴스 모두 지난 1년사이에 발생했다.

모토로라를 축으로 하는 이같은 굵직한 투자외에도 인터넷 선두주자인
AOL 오라클 MCI월드콤 등의 진출도 속속 이뤄지고 있다.

담배산업으로 유명했던 리치몬드 지역이 새삼 실리콘 도미니언으로 뜨는
이유는 뭘까.

먼저 기업활동에 들어가는 비용이 싼 점을 들 수 있다.

임금 에너지비용 세금 사무실임대료 4가지를 기준으로 기업활동 비용을
따질 때 미국 전체평균보다 5.2%나 낮은 것으로 조사(97년 기준 Regional
Financial Associates)됐다.

빌딩임대료는 전국평균보다 16% 싸고 세율도 전국 50개주중 밑에서 5번째로
낮다.

주택비는 동부해안도시중 가장 싸고 전국에서도 3번째로 싸다.

교통환경도 탁월하다.

대서양연안의 중간지점에 있어 육지 하늘 바다 모두 막힘이 없다.

각 주를 연결하는 6개의 주요 도로망과 3천1백88마일의 철도가 있어
미국 인구의 절반에 가까운 1억명의 소비자들에게 육로로도 이틀이면 닿을 수
있다.

세계정치의 중심지인 워싱턴DC까지도 차로 2시간 거리인 1백마일에
불과하다.

9개의 대형 공항과 57개의 소규모 공항이 있고 인근 햄프튼로드 항구는
국제화물수송량이 미국 전체에서 가장 많을 정도다.

그러나 기업들이 이곳으로 향하는 결정적인 이유는 다른 데 있다.

지방정부와 주민들의 친기업적이고 적극적인 투자유치 의지다.

이 지역 투자를 선도하고 있는 모토로라의 폴 J. 심프 반도체생산부문
수석부사장은 지방정부와 주민들의 열정적인 협력이 투자를 결정하게 된
가장 큰 배경이라고 설명했다.

모토로라의 투자를 유치하기 위해 리치몬드지역의 지방정부와 버지니아주립
대학이 협의해 공과대학을 세운 것은 민.관.기업 협력체제 구축의 대표적인
사례로 평가되기도 한다.

버지니아공대, 그리고 같은 맥락에서 세워진 버지니아생명공학연구소 등은
21세기의 대학이나 연구소가 어떤 방향으로 나가야 할 것인지를 말해주고
있다.

이같은 노력으로 리치몬드 지역은 기업활동을 위한 미국 최고의 중소도시
(엔터프리너지 97년), 기업하기 좋은 남부지역 최고의 도시(머니잡지 98년
7월호), 북미지역에서 비즈니스조건이 개선된 10개 도시중 하나(포천 97년
11월호) 로 선정되는 등 언론의 호평받고 있다.

1백50개이상의 외국계열 기업들은 물론 포천이 선정한 1천개 기업중 17개
기업의 본사가 이 곳에 있는 것도 결코 우연은 아니다.

리치몬드 지역의 활력은 실리콘 도미니언이 실리콘밸리를 따라잡을 날도
그리 멀지는 않았음을 예고해 준다.

< 리치몬드(버지니아주) = 육동인기자yooks@worldnet.att.net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9월 17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