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크 무어 < WTO 신임사무총장 >


지난해는 다자간 무역시스템이 출범한지 50주년 되는 해였다.

얼마전에 나는 작년에 열린 50주년 기념행사에서 각국 지도자들이 행한
연설을 읽어봤다.

미국의 클린턴 대통령으로부터 쿠바의 카스트로, 영국의 토니 블레어 총리에
이르기까지 각국 수뇌들은 한결같이 다자간 무역시스템이 중요하다고 강조
했다.

세계 각국이 그 어느때보다 서로 긴밀하게 의존하고 있기에 경제개발과
안정을 위해 다자간 무역시스템이 필수불가결하다고 지적했다.

왜 이같은 컨센서스가 이뤄지고 있는 것일까.

그것은 지난 50년간의 역사를 돌이켜 보면 다자간 무역시스템 이외에 다른
대안이 없기 때문이다.

이들 지도자는 파시즘과 공산주의가 모두 극단적인 보호무역 정책을 썼다가
참혹한 결과를 초래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보호주의의 종착점은 깊고도 오랫동안 지속된 경제불황이었다.

이들은 무역장벽을 제거하면 모두가 이득을 얻게 되고 국제사회는 더욱
안정된다는 것을 경험으로 절감하고 있다.

국제교역에서 비차별원칙은 경제국수주의를 막을 뿐 아니라 보호무역주의가
다시 발호하는 것을 막아준다.

다자간 무역시스템하에서는 힘이 아닌 법이 지배한다.

다자간 무역체제에서는 무역분쟁과 마찰은 어느 국가나 접근 가능한 절차를
통해 해결된다.

세계무역기구(WTO)는 각국의 독립과 주권을 강화시키는 역할을 한다.

독립이란 국가들이 상호 의존할 때 가장 효과적으로 유지된다.

어느 나라도 현재건 미래에서건 혼자서는 미래를 보장할 수 없다.

어떤 나라도 다른 나라의 협력없이 암이나 에이즈를 치료하고 깨끗한 공기나
물을 마실 수 없다.

다자간 무역시스템이 더 개방적일수록 세상 모두에게 돌아가는 이익이 더
커진다.

WTO는 국제사회에서 리더십을 보여야 한다.

자국만을 생각하는 국수주의적인 세력과 싸워 이겨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부유한 나라들은 가난한 나라들에게 문을 닫아버릴지도
모른다.

그동안 다자간 무역시스템은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좀 더 높은 생활수준을
제공해주었다.

그리고 지금은 인류 역사상 그 어느때보다도 사람들은 투표소에서, 또
시장에서 더욱 많은 자유를 만끽하고 있다.

20년전만해도 대부분의 남미국가들과 유럽의 절반, 거의 모든 아프리카
국가들은 독재자들의 수중에 있었다.

경제적 자유와 정치적인 자유는 서로 분리될 수 없다.

이중 하나가 없으면 나머지도 존재하지 않는다.

새 밀레니엄을 눈앞에 두고 힘이 아닌 법에 의한 지배가 글로벌화된 세계를
움직이는 중심축이 돼야 한다.

베를린 장벽이 붕괴된 것은 많은 사람들이 정치적인 자유를 원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뒤에는 경제적 자유에 대한 갈구가 더 절실했다.

냉전의 종식과 함께 국가계획 경제와 자유시장경제간의 대립과 경쟁도
끝났다.

중남미와 아시아, 아프리카 나라들은 수입대체와 보호무역주의를 고집하다가
최근들어 자유무역으로 기울고 있다.

이같은 변화는 다자간 무역시스템에 큰 영향을 주었다.

WTO의 전신인 관세및 일반무역협정(GATT)이 지난 47년 등장했을 때 참가국
수는 고작 23개국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나 오늘날 WTO회원국은 무려 1백35개에 달한다.

중국과 러시아 등 30여국은 가입을 준비중이다.

이처럼 많은 나라들이 가입해 있고 또 가입하려 한다는 것은 바로 다자간
무역시스템이 타당하다는 반증이다.

물론 다자간 무역시스템이 완벽하지는 않다.

그러나 한가지 분명한 것은 어떤 문제들도 앞으로는 다자간 무역시스템을
통하지 않고는 해결될 수 없다는 점이다.

올해말이면 뉴라운드가 시작된다.

많은 사람들과 국가들로부터 지지를 얻기 위해서는 WTO를 개혁해야 한다.

WTO가 세계를 있는 그대로 대변할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한다.

많은 나라들이 경비문제 등으로 제네바의 WTO본부에 대표조차 파견하지
못하고 있다.

많은 나라들이 회의에 참석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는 것이 중요하다.

이는 곧 모든 국가의 이익에 부합되는 것이기도 하다.

나는 WTO의 분쟁해결시스템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그리고 이 분쟁해결 시스템이 다른 국제분쟁의 모델이 되기를 바란다.

그러나 일부 작은 국가들은 자신들의 이익을 제대로 챙길 수 있는 기술도
능력도 없다.

WTO는 전 세계를 대변해야 한다.

때문에 중국 사우디아라비아 등을 가입시키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

만약 시애틀 회담 이전에 이것이 성사된다면 이는 실로 대단한 일이 될
것이다.

어떤 게임에서나 낙관론자들이 승리한다.

그것은 그들이 반드시 옳아서가 아니라 긍정적이기 때문이다.

잘못 됐을 때도 그들은 긍정적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에게는 미래가 있다.

< 정리=김선태 기자 orca@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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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지난 1일 취임한 마이크 무어 WTO 신임사무총장이 최근 뉴질랜드
국제문제연구소에서 행한 연설을 정리한 것이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9월 16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