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통화당국의 두 고집불통이 마침내 두 손을 들었다"

9일자 월스트리트저널과 뉴욕타임스에는 미국의 "신경제(뉴 이코노미)"
논란과 관련해 각각 흥미로운 기사가 실렸다.

인터넷 등 정보화 기술(IT)에 의한 신경제 효과를 인정하는데 인색했던
두 명의 저명한 통화당국자가 "전향"을 선언했다는 내용이다.

두 명의 전향자는 앨런 그린스펀 연방준비제도 이사회(FRB) 의장과 로렌스
마이어 연준위원.

이 중에서도 마이어 위원이 생각을 바꿨다는 사실이 더욱 화제다.

그는 보수적이라는 FRB 내에서도 신경제론을 인정치 않는 최선두에 서왔다.

신경제론이란 "과거의 호-불황 주기가 사라지고 저물가와 고성장이 공존
하는 장기 호황이 가능하게 됐다"는 가설이다.

그러나 이는 미국 경제를 과대평가한데 따른 것으로, 상충되는 두 요소가
언제까지나 양립될 수는 없으리라는게 마이어 위원의 소신이었다.

그린스펀 의장은 신경제 효과를 부분적으로는 인정해 왔다.

그러나 주가가 과열 조짐을 보이는 등 경기 전선에 조금만 이상 징후가
나타나도 금리 인상을 경고하는 등 즉각 태도를 바꿨다.

이랬던 두 사람이 8일 필라델피아와 미시건에서 각각 행한 연설을 통해
신경제론에 대한 전폭 지지를 표명했다.

"IT가 기업들의 재고 관리, 유통 시스템과 고객 서비스 등을 개선시켜
생산성이 크게 향상됐다"

두 사람이 입이라도 맞춘 듯 강조한 대목이다.

IT 및 이에 바탕을 둔 "사이버 자본주의 혁명"이 바꾸어 놓은 것은
고집스러웠던 통화 당국자들의 마음뿐이 아니다.

미국의 산업 지도까지도 뒤바꾸고 있다.

경제계 인사들에게 수도 워싱턴은 정치인과 공무원, 변호사와 로비스트들이
득실거리는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도시"일 뿐이었다.

하지만 최근들어 사정이 달라졌다.

지난 1,2년새 인터넷 업계의 유수업체들이 이 일대에 앞다퉈 둥지를
틀면서 일약 미국 최대의 "사이버 파크"로 떠올랐다.

간판 서버회사인 아메리칸 온 라인(AOL)을 비롯, 온라인 서비스업체인
네트워크 솔루션 등이 이곳에 자리잡았다.

장거리 전화회사인 MCI도 워싱턴을 본거지로 택했다.

지난 1년여 사이에 이곳에서 탄생한 인터넷 분야의 벤처기업만도 수백개에
달한다.

덕분에 워싱턴은 미국 언론들로부터 "실리콘 스왐프(늪)"라는 별명까지
얻었다.

이 지역에 굳이 "늪"이라는 별명이 붙은 데는 이유가 있다.

사이버 산업에서는 일정 이상의 규모와 경쟁력을 갖춘 기업, 상황 변화에
신속하게 적응하는 기업이 아니면 살아남을 수 없기 때문이다.

늪에서는 덩치가 크거나 변신에 능한 물고기만이 살 수 있는 것과 같은
이치다.

현재 워싱턴의 실리콘 스왐프에서 활동하는 전문직 기술자는 20만8천7백여명
에 이른다.

공무원들을 훨씬 능가하는 숫자다.

워싱턴은 산호세의 실리콘 밸리, 보스턴의 루트 128공단에 이어 규모면에서
미국내 3번째의 "인더스트리얼 파크"로 급부상했다.

인터넷 산업으로만 치면 미국내 최대 거점지역이다.

워싱턴 시민들에게 화제의 "스타"는 더 이상 정치인들이 아니다.

하원의장이 누구인지는 몰라도 AOL의 스티브 케이스 사장을 모르는 워싱턴
시민은 없다는 얘기까지 있다.

이렇게 워싱턴의 면모를 짧은 시간안에 뒤바꾸어 놓은 "사이버 붐"의
원천은 다름아닌 정부 규제완화였다.

실리콘 스왐프의 발상 기업은 80년대에 이곳으로 본사를 정한 MCI다.

워싱턴의 연방 정부가 전파 등 통신 및 인터넷 관련 규제 권한을 틀어쥐고
있던 당시 효율적인 정부 로비를 위해서는 정부 청사 가까운 곳에 있는게
유리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실리콘 스왐프가 본격 형성된 것은 최근 몇 년새다.

미국 정부가 정보 통신 분야의 획기적인 규제 완화를 단행한 덕분이다.

"사이버 자본주의 혁명"이 꽃을 피우기 위해 최우선적으로 필요한 것은
민간의 창의가 자유롭게 통용되는 환경이다.

쇠락해가던 정치 도시 워싱턴의 화려한 "사이버 변신"은 바로 이런 메시지
를 전해 주고 있다.

< 뉴욕=이학영 특파원 hyrhee@earthlink.net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9월 11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