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약은 입에 쓰고 진실된 충고는 귀에 거슬리게 마련이다.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오마에 겐이치 교수의 고언과 충고도 그런 것이
아닌가 한다.

지난달 사피오라는 일본의 경제평론지에 "한국이 경제적으로 일어설 수 없는
이유"라는 제목의 기고문을 통해 한국정부의 경제정책과 산업구조를 신랄히
비판한 바 있는 그는 본보 도쿄 특파원과 가진 기자회견(1일자 12면 보도)
에서도 같은 요지의 뼈아픈 충고를 내놓아 관심을 끌고 있다.

"한국 경제는 일본의 하도급 체제에서 벗어날 수 없고, 재벌 해체는 대안도
없이 국가경제의 뿌리를 흔드는 것이며, IMF가 요구하는 경제구조개혁은
오로지 미국의 이익을 위한 장치일 뿐"이라는 그의 지적은 우리정부가 추진해
온 경제개혁의 철학과 해법을 전면 부정하고 있다는 점에서 적잖이 당혹스런
것이 사실이다.

"당신의 얼굴은 이러저렇게 못생겼다"고 대놓고 말하는 그의 어법이야 기분
좋을 것이 없지만 재벌정책이나 산업정책, 한국산업의 경쟁력 등에 대한 그의
지적과 고언은 어느 한부분도 흘려들을 수 없는 아픈 진실을 안고 있다 할
것이다.

특히 우리 정부가 핵심적인 개혁과제로 설정하고 있는 재벌정책에 대한
비판은 매우 시의적절하고도 정곡을 찌르고 있다 하겠다.

산업정책의 밑그림이 없다는 지적은 국내에서도 거듭 제기된 바 있지만
재벌개혁은 정치권이 아닌 시장에 맡겨야 한다는 그의 제언은 백번 옳은
방향이다.

"재벌해체가 자칫 경제기반의 붕괴를 가져올 것"이라는 점은 본란에서도
지적한 바 있지만 "(재벌)체제를 부수는데는 1년이면 족하지만 새로운 제도가
정착되는데는 10년이 걸릴 것이며 더욱이 대안도 없다"는 그의 경고는 정부
당국자들도 새겨 들어야 할 대목이다.

"대기업이 곧 경쟁력"이라는 사실은 지금 세계적 규모로 진행되고 있는
메가머저(mega merger) 열풍에서도 입증된다고 할 것이고 자본과 기술이 없는
상태에서 국제경제 환경에 어렵사리 적응해온 결과물(재벌체제)을 두고 대안
없는 해체론을 주장할 수 없다는 것은 굳이 그의 말을 빌리지 않더라도
자명한 일이다.

물론 그의 주장이 모두 옳은 것은 아닐 것이다.

외환위기 수습과정에서의 미국의 역할이나 IMF의 경제개혁 지침을 비난하는
부분에는 논리의 비약도 없지 않아 보인다.

그러나 한 외국 평론가의 말이 이처럼 반향을 일으키는 것 자체가 최근들어
우리정부의 정책추진 과정이 매우 일방적이고도 강압적이라는 사실을 반증하
고 있다는 점을 당국자들은 깊이 새겨두길 바란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9월 2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