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헌재 금융감독위원장이 서울은행 매각협상의 결렬가능성을 시사한 것은
당초 제일.서울은행을 모두 파는 데서 한곳만이라도 파는 쪽으로 정부방침이
선회했음을 의미한다.

정부의 일정대로라면 제일.서울은행은 적어도 상반기중엔 매각이 완료
됐어야 했다.

외국주주들의 선진금융기법으로 무장, 국내은행들과 경쟁하면서 은행들의
수준을 한단계 높이는 역할을 맡았어야 한다.

그러나 MOU(양해각서)를 체결한지 6~8개월이 흘렀음에도 아직 구체적인
협상진전 소식이 없다.

대우사태를 계기로 더이상 해외매각 대상이라고 방치해 놓기도 어렵게 됐다.

따라서 정부는 한곳(제일)은 확실히 파는 대신 다른 한곳(서울)은 다른
해법을 찾는 쪽을 모색하고 있는 것이다.

금융계에선 오래전부터 홍콩상하이은행(HSBC)와의 협상은 사실상 결렬선언
만 남았다는게 정설이다.

IMF는 한곳만 팔더라도 한국의 대외신인도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는 언질을
준 것으로 알려졌다.

대신 정부는 서울은행에 외국인행장을 앉혀 해외매각에 버금가는 효과를
내도록 한다는 복안이다.

정부 관계자는 "해외 투자기관들이 작년부터 정작 바라는 것은 외국인이
국내은행장이 되는 것이었다"고 말했다.

정부는 우선 서울은행에 대해 제일은행처럼 "선 정상화" 수순을 밟기로
했다.

이르면 다음주 금감위 정례회의(13일)에서 공적자금 투입 및 감자를 결의할
방침이다.

서울은행은 상반기 7천5백50억원의 적자를 내는 등 자본잠식상태다.

BIS(국제결제은행) 자기자본비율을 10% 이상으로 끌어올리기 위해선 증자
지원과 부실채권 매입에 약 4조5천억원이 소요될 것으로 보고 있다.

서울은행이 제대로 은행구실을 해야 대우 워크아웃이나 협력업체 지원이
가능해진다.

그러나 협상중단 사유에 대해선 금감위와 HSBC의 설명이 엇갈린다.

양측은 사실상 5,6월중 몇번 만난뒤 2개월여동안 협상 두절상태다.

금감위는 HSBC가 뉴브리지보다도 훨씬 경직돼 있다는 분석이다.

5월말께 서울은행 자산실사후 가진 협상에서 우리측이 받아들이기 어려운
조건을 제시한 뒤 한발도 물러서려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에대해 HSBC측은 "한국내에서 영업할 의지를 갖고 있다(현재 4개 지점)"
며 한국정부를 거슬려가며 협상을 어렵게 끌고갈 이유가 없다고 밝혔다.

아직도 금감위가 응한다면 협상할 의사가 있다는 입장이다.

협상이란 처음엔 극과 극에서 출발해 차츰 좁혀가는게 상례인데 금감위가
이견조정보다는 MOU(양해각서) 존중을 강조했다는 것이다.

결국 HSBC와의 협상은 제일은행 매각협상에 밀려 제대로 논의도 못해 본채
결렬 수순으로 접어들 전망이다.

정부는 서울은행을 정상화한뒤 당장 재매각에 나서진 않을 것으로 보인다.

< 오형규 기자 ohk@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8월 31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