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3년부터 1998년까지 국내 보호 시설에 수용된 정신지체 장애인 66명이
강제 불임수술을 받았다는 사실이 밝혀져 우리 사회는 큰 충격을 받았다.

이 일을 밝힌 김홍신 의원에 따르면 이런 강제 불임수술은 정부기관들의
주도로 이루어진 혐의가 짙고 아직 밝혀지지 않은 경우도 있는 듯하다고
한다.

강제 불임수술은 근본적으로 우생학(eugenics)의 주장들에, 제대로 해석됐든
잘못 해석됐든, 바탕을 둔다.

우생학은 인류의 유전적 잠재력을 유지하거나 향상시키려는 응용 과학으로
19세기 후반에 진화론의 영향 아래 영국 과학자 프란시스 골턴(1822~1911)에
의해 창시됐다.

골턴은 유능한 과학자로서 별다른 편견이 없었고 새로운 학문에 과학적
바탕을 마련해주려고 애썼다.

불행하게도 그의 추종자들 가운데 많은 이들이 계급과 인종에 관해서 편견을
가졌고 그런 편견에 바탕을 둔 정책들을 주창했다.

덕분에 우생학은 악명을 얻었다.

특히 나치 독일은 독일 민족의 우월성을 주장하면서 야만적 우생학 정책을
추구했다.

다행히 1930년대부터 계급적, 인종적 편견을 지지한 연구 작업들이 속속
논파돼서 1960년대엔 우생학은 악명을 많이 씻어낼 수 있었다.

우생학은 우수한 부모들이 아이들을 많이 낳도록 권장하는 적극적 우생학
(positive eugenics)과 결함을 지닌 부모들이 아이들을 적게 낳도록 하는
소극적 우생학(negative eugenics)으로 나뉜다.

20세기 초엽에 우생학자들은 육체적, 정신적 결함을 지닌 사람들의 불임
수술에 큰 중요성을 부여했다.

그래서 미국과 유럽의 여러 나라가 그런 불임 수술을 허용하는 법률을
만들었다.

현재 적극적 우생학은 별다른 지지를 받지 못하고 있지만, 소극적 우생학은
여전히 큰 영향력을 누리고 있다.

소극적 우생학은 상당히 건실한 과학적 바탕을 지녔고 그 주장은 정당한
문제 두 가지를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하나는 큰 유전적 결함을 지닌 사람들이 아이들을 낳는 것은 사회에 큰
짐이 된다는 사실이다.

따라서 큰 유전적 결함을 지닌 아이들이 태어나는 것을 막으려는 노력은
어느 사회에서나 나오게 마련이다.

다른 하나는 인류의 유전적 잠재력에 대한 걱정이다.

특히 자연 선택의 효력이 점점 줄어든다는 사실은 심각한 함언들을 지녔다.

생활 수준의 향상과 의학의 발전은 한때는 치명적이었던 병을 고칠 수 있는
병으로 만들었다.

그런 병들 가운데 상당수는 유전적 원인에 의한 것이다.

결함이 있는 유전자들을 지닌 사람들은 전에는 아이들을 낳기 전에 죽었지만
이제는 결함이 있는 유전자들을 후대에 물려주게 됐다.

자연히 인류의 유전자 집합에서 결함이 있는 유전자들이 많아지게 된다.

여기서 지적해야 할 것은 유전에 대한 연구는 시작된 지 얼마 되지 않았고
유전에 관한 지식은 아직 불완전하다는 사실이다.

따라서 우리는 우생학이 다루는 문제들에 아주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한다.

그렇긴 해도 인류의 유전적 잠재력에 대한 걱정은 정당한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보면 큰 유전적 결함을 지닌 사람들이 아이들을 낳는 일을 그냥
내버려두는 것은 옳은 정책이 아님이 드러난다.

치매에 걸린 부모를 모시는 일로 지쳐서 한 가정이 무너지는 경우가 드물지
않다는 사실을 떠올리면, 자기 몸을 가누기도 힘든 장애인들이 둘레 사람들이
나 사회에 주는 부담의 크기를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그리고 그런 부담이 있다는 사실을 사회가 외면하면, 강제적 불임 수술과
같은 극단적 반응이 조만간 나오게 마련이다.

한 보호시설의 책임자가 한 말은 이 점을 잘 보여준다.

"불임수술을 시켜 남녀가 함께 살도록 하는 것이 인도적인지, 그냥 결혼을
시켜 불행한 가족과 2세를 만들어내는 것이 옳은지 고민한 끝에 보사부에
보고하지 않고 독자적으로 판단했다"

현재 우리가 지닌 유전자에 관한 지식과 의술 수준을 생각하면, 현실적
대책은 최소한의 소극적 우생학적 조치다.

먼저 유전적 결함을 가진 사람들에 대해선 상담을 통해 그들이 스스로
아이를 갖지 않도록 유도하는 것이다.

그런 판단을 내릴 수도 없을 만큼 큰 정신적 결함을 가진 사람들에 대해선
정부의 감독과 지원 아래 피임약을 복용하게 하는 것이다.

불임 수술의 끔찍함을 피하면서도 피임이 목적을 이룬다는 점에서, 그리고
피임약들의 유효기간이 점점 늘어난다는 사정까지 겹쳐, 이것은 무척 현실적
방안이라 할 수 있다.

이 세상에 아무런 제약이 없는 권리는 존재할 수 없다.

그래서 어떤 권리를 제대로 보장하는 길은 그것에 아무런 제약을 두지 않는
것이 아니라 꼭 필요한 최소한의 제약을 명시적으로 두는 것이다.

큰 유전적 결함을 지닌 사람들이 아이들을 낳을 권리도 예외가 아니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8월 31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