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덥고 지루한 여름철의 막이 내려 가고 있지만 미국증시는 나른함에서
깨어나지 못하고 있다.

금리 움직임을 빼고는 장세에 영향을 줄 이렇다할 재료도 없고, 피서지로
떠난 월가의 베테랑 투자자들은 아직도 증시를 관망하고만 있을 뿐이다.

주말인 지난 27일 뉴욕 증시의 다우존스지수는 1주일 전보다 0.09%(10.44
포인트) 떨어진 11,090.89에 마감됐다.

한 주일 동안 거의 제자리 걸음을 한 셈이다.

시장의 예상대로 0.25%포인트의 금리인상으로 "불확실의 안개"가 걷힌
24일을 전후해 주가가 뜀박질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 뜀박질이 대세로 이어지기에는 받쳐주는 재료가 없었다.

다우지수는 25일 사상 최고치인 11,326.04까지 올랐지만 그 뒤 이틀동안
연속 미끄럼을 탔다.

주가를 되끌어내린 데는 앨런 그린스펀 연준리(FRB)의장의 27일 연설도
한몫 했다.

그린스펀 의장은 이날 와이오밍주에서 열린 캔자스시티 연방준비은행 회의에
참석, "주가의 과대 평가는 미국경제 전반에 부담을 주는 만큼 금융정책을
결정하는데 중요하게 반영할 것"이라는 요지의 말을 했다.

이같은 발언은 투자자들에게 연내 금리가 추가로 인상될 수도 있다는 우려를
안겨주면서 "팔자"를 자극했다.

이 발언이 있기 전까지만 해도 월가에서는 24일의 0.25% 포인트 인상으로
올 금리 조정이 마무리됐을 것이라는 인식이 지배적이었다.

그린스펀 발언은 거래량 급감으로 나른해진 증시 분위기와 맞물려 파장이
더욱 증폭됐다는 분석도 있다.

주말인 27일의 경우 뉴욕증시에서 거래된 주식은 5억5천여만주에 불과했다.

지난 3개월간의 하루평균 거래량(7억1천9백만여주)에 크게 미달하는 올들어
최저 수준이었다.

전통적으로 8월 한달은 월가의 큰 손 투자자들이 휴양지로 떠나며 "개점
휴업"하는 기간이다.

여기에다 증시재료부족까지 겹쳐 거래부진 현상이 더욱 두드러졌다.

뉴욕증시에서 다우지수와 쌍벽을 이루는 S&P500 지수는 지난주 소폭이나마
오름세를 탔다.

그러나 상승폭이 0.87%에 불과해 다우지수나 마찬가지로 사실상 제자리
걸음이었다.

증시의 이같은 무기력 속에서도 기술관련 주식들의 "재기"움직임은 돋보였다

휴렛팩커드 등 컴퓨터 관련 종목들을 비롯해 상당수 기술주들이 주말로
접어들면서 상승의 기지개를 켰다.

대형 우량주의 대명사로 통하는 IBM은 지난 한주동안 18.4% 뜀박질했으며
주초 기우뚱했던 휴렛패커드는 주말에 대분전하는 등 대형주들이 증시 전반의
시들한 분위기를 그나마 일깨웠다.

이같은 분위기를 반영, 첨단기술주 위주의 나스닥지수는 한주동안 4.17%
뛰어올랐다.

그러나 아메리트레이드 E트레이드그룹 찰스슈왑 등 일부 인터넷 관련 주식
들은 지난 주에도 하락세가 이어지는 등 여전히 찬서리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이번주 발표될 노동부의 7월중 실업률 및 시간당 평균임금 등 고용 관련
통계는 증시 유일의 변수로 돼 있는 금리정책과 관련, 작은 분수령이 될
것으로 보인다.

그린스펀의장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최근 발표된 일련의 거시 지표들은 경기
연착륙에 대한 기대감을 높여줘 왔다.

미국의 지난 2.4분기 성장률이 1.8%로 당초 추정치(2.3%)를 훨씬 밑돈데
이어 7월중 개인소비지출 및 개인소득 증가율도 각각 0.4%와 0.2%로 전문가
들이 전망했던 0.5%선에 못미쳤다.

무기력증 속에서 끝없는 "인플레 걱정"에 시달리고 있는 미증시의 향후
행보는 여전히 안개 속이다.

< 뉴욕=이학영 특파원 hyrhee@earthlink.net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8월 30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