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의 눈에 박혀있는 대들보는 놔둔 채 남의 눈에 낀 눈꼽이나 떼 주려는
사이비 봉사자들을 쉽게 찾을 수 있다.
증언하는 사람, 질문하는 사람, 그걸 보며 비웃는 국민, 청문회를 비판하는
언론들을 포함해 하나같이 남의 티만 찾아내려고 한다.
21세기는 이미 우리 곁에 다가와 앞으로 나아가라고 밀쳐대는데, "잘나리
타령"으로 아까운 시간과 종이와 전파만 낭비하고 있다.
남들이 망신 당하는 모습을 보며 무슨 스트레스를 풀려는 속셈이 아니라면
텔레비전을 함께 보는 자녀들의 눈도 의식했으면 좋겠다.
진실되지 않은 마음으로 진실을 밝히겠다는 희한한 대의명분 때문에 온
나라가 코미디 왕국이 되고 있는 것이다.
텔레비전 앞에서 지도자급 코미디언들을 비웃는 부모 모습을 자녀들는 어떤
눈으로 바라보고 있을까.
자신은 가진 것도 없으면서 공연히 남을 깔보는 습성이 몸에 밴 어른들,
말로만 미래를 외치면서 변화의 물결에서 빠져나오려는 어른들의 모습에
부모의 얼굴이 합성되고 있을 것이다.
오천년 역사를 자랑하면서도 계승되고 있는 건 조선시대를 넘지 못하고,
세계화를 주장하면서도 섬나라 근성을 갖고 있다고나 할까.
하긴 지난 50년간 우리는 섬나라나 다름 없었다.
위쪽은 북한, 동서남쪽은 바다에 가로막혀 있었다.
게다가 해방후 일본 잔재를 털어내는데 쓰여진 도구는 아이러니컬하게도
일본제들이 대부분이었다.
일본 법령 번역본과 일제 첨단제품으로 잔재를 털어내다가 지금은 미국제로
대체되고 있는 것이다.
그 사이에 우리의 대륙적 근성은 추억 밖에 남아있지 않은지도 모른다.
그래도 지도자들은 국민들 기죽이지 않으려고 "위대한 한국인"만
부르짖었다.
인터넷으로 모든 정보들이 공개되고 있는 지금 우리가 세계에서 어느 수준쯤
되는지 진짜 주제파악을 해두지 않으면 안된다.
인구 25위라면 그리 작은 나라는 아니다.
그런데도 우린 옷 사건이 나면 옷 얘기,비가 오면 비 얘기로 전국이
뒤덮힌다.
돼지값이 오른다면 모두 돼지를 키우고 인터넷 사업이 좋다니까 어른아이
할 것 없이 거기 매달린다.
21세기는 날짜만 바뀌는 것이 아니다.
생각이 바뀌는 것이 가장 무섭다.
우리가 이웃과 이웃나라들을 비웃으며 이전투구로 날을 새우는 동안 남들은
저만큼 나아가 있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8월 30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