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조조정을 주도하는 금융감독위원회에는 두가지 특징이 있다.

하나는 기록을 남기지 않는다는 점이다.

다른 한가지는 모든 조치는 불가피한 것일 뿐 정책실패는 없다는 것이다.

금감위가 대우사태(7월19일)이후 각 금융기관에 발송한 공문은 단 한장이다.

지난달 30일 이헌재 금감위원장 명의로 대우 협력업체의 진성어음 할인에
적극 협조해줄 것을 요청했던 것 뿐이다.

금감위는 그동안 수익증권 환매규제 및 해제, 대우채권부문 환매제한, 대우
특별약정체결, 12개 계열사 워크아웃(기업개선작업) 결정에 이르기까지
금융기관에 보내는 공문을 만든 적이 없다.

외견상으론 직접 개입한 흔적이 아무데도 없는 셈이다.

H투신 실무자가 창구지도(환매금지)를 문서로 만들어 각 금융기관에
돌렸다가 금감원에 불려가 혼쭐이 난 적도 있다.

금감위.금감원 간부들이 호텔에서 합숙까지 해가며 대우채권 편입분에 대해
환매제한 구도를 짰는데도 금감위는 여전히 업계 건의였다고 잡아뗐다.

모든 조치들이 금융기관의 건의를 수용했거나 채권단이 알아서 한 일이란
것이다.

금감위는 금융감독 차원에서 관리했을 뿐이란 설명이다.

금감위가 26일 발표한 "대우 워크아웃 추진에 대한 정부입장"이란 발표문도
채권단의 결정에 대해 정부는 잘되길 기대한다는 내용일색이다.

이는 마치 영화감독이 "나는 영화의 등장인물이 아니므로 흥행에 책임없다"
고 주장하는 것에 다름아니다.

대우 워크아웃 돌입시점에 대해서도 금융계에선 실기했거나 초기대응이
잘못됐다는 비판이 분분하다.

적어도 일주일전에는 들어갔어야 한다는 지적이다.

대우의 유동성위기가 심각해지고 협력업체들이 아우성친 뒤에야 워크아웃이
결정됐다.

은행 관계자는 "정부 스스로 결과(시장반응)를 겁냈기 때문"이라고 지적
했다.

워크아웃 얘기를 흘려 시장 반응이 나쁘지만은 않다는 판단이 선후에야
결정된 셈이다.

그러나 금감위는 불가피했다고 설명한다.

대우사태 초기에 들어갔으면 시장이 망가졌고 놔두면 협력업체가 큰일난다는
것이다.

이런 식의 설명이면 정책실패는 전혀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시장에선 대우사태와 관련된 모든 조치.결정들이 금감위의 주도와 조종아래
이뤄졌음을 잘 알고 있다.

금감위가 "보이지 않는 손"으로 조종하다가 미국의 경제학자 E.K.헌트가
지적한 "보이지 않는 뒷발"에 얼마나 크게 당할지 걱정이다.

< 오형규 경제부 기자 ohk@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8월 28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