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병호 < 자유기업센터 소장 >

지난주는 8.15 경축사를 두고 설왕설래한 한 주였다.

"까마귀 날자 배 떨어진다"고나 할까.

곧이어 김태동 정책위원장의 "인적청산"론과 황태연 정책위원의 "재벌해체"
론이 튀어나오면서 재벌개혁의 방향을 두고 여러 이야기들이 따랐다.

또한 국민기초생활보호법, 저소득층 자녀들에 대한 학비지원, 농어촌부채의
정부보증 등 갖가지 선심성 정책들이 쏟아져 나왔다.

이들 정책은 그 중요성을 미루어볼 때 특집 등을 꾸며 체계적으로 다뤄야할
만큼 중요한 사안들이다.

하지만 1주일동안 산발적인 기사들만을 볼 수 있었다.

물론 전문가들의 칼럼과 취재여록 및 특파원 코너 등에서 한국경제신문의
논조를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러나 메가톤급 사안들임을 고려할 때 특집과 사설 등을 체계적으로
결합해서 정론을 이끄는 것이 도리였다고 생각한다.

이를테면 한경 19일자에 보도된 고 최종현 SK 회장의 유고집이 담고 있는
중요 내용들, 즉 작은정부론 세제개혁 복지개혁 등도 포인트를 잘 잡으면
최근의 정부정책에 대한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할 수 있는 부분들이다.

"최저 임금제 실업악화 초래"와 같은 제목은 문제의 포인트를 잡지 못하고
있음을 단적으로 나타낸다.

산발적인 기사가 아니라 지금쯤 현 정부의 경제정책 노선과 이념에 대한
본격적인 검토 작업을 한국경제신문에서 다루어야 할 것이다.

분배와 형평 위주로 정책선회가 확연히 느껴짐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제어장치 없이 모든 것이 추진되고 있다는 인상을 갖게 된다.

구체적인 정책에 대해서 찬반양론이 있어야 정책으로 인한 비용을 줄일 수
있을 것이다.

주자학의 후예들이 가뜩이나 많은 사회에서 실리보다는 명분, 효율보다는
형평, 생산보다는 분배, 현실보다는 이상을 앞세우는 문약한 지식인들이
상공인들을 압도하는 일들이 전개되고 있다.

필자는 최근 경제정책을 둘러싼 갈등을 단순히 해프닝으로 보지 않는다.

갈등의 뿌리는 우리 역사와 문화에 면면히 흐른다.

문을 숭상하는 지식인들과 현장을 뛰는 상공인들이 오랫동안 갈등과 반목을
거듭해 왔고, 여기서 언제나 정치권력을 쥔 사람들이 압승을 거두었다.

조선조 역사는 문이 상을 철저히 억압한 역사였다.

자기노력으로 재산을 만들면 만들수록 관에 의해서 수탈되거나 자칫 목숨을
잃을 수 있었던 때가 조선조였다.

1백여년 전에 한국을 방문했던 버나드 비숍 여사는 이렇게 말한다.

"나는 한국의 농부들이 일본 농부처럼 행복하고 근면하지 못할 이유를 전혀
알지 못한다. 다만 여기에는 중요한 단서가 있다. 그것은 내가 누누이 강조
했듯이 "생업에서 생기는 이익을 보호해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모든 한국
사람들은 가난이 최고의 방어막일 뿐, 최소한의 음식과 옷 이외에 자신이
소유한 것은 탐욕스럽고 부정한 관리들에게 빼앗길 거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이런 질곡의 역사에 숨통을 튼 사건이 60,70년대 경제개발기에서 일어난다.

30여년의 힘겨운 경제발전기를 거치면서 우리는 대기업들을 겨우 만들어내는
데 성공했다.

이제는 이런저런 이유 때문에 이것들을 분해하자는 이야기가 물밀듯이
나오고 있다.

지금 기업계 일각에서는 혹시라도 5대 그룹에 포함되면, 혹은 30대 그룹에
들어가게 되면, 때로는 중소기업이 대기업으로 성장하면 수십 수백가지 추
가적인 규제에 시달릴 것을 고민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세계 어느 나라에서 기업가들이 기업의 규모가 커지는 것을 고민하면서 더
이상의 성장을 거부하는 사회가 있겠는가.

하지만 웃지 못할 일들이 이 땅에서 일어나고 있다.

한 사회의 엘리트들이 상공업을 천시하는 것은 비단 한국의 일만이 아니다.

하지만 이 사회에서는 그 정도가 너무 심하다.

"기업가에 의해 부는 끊임없이 창조되는 것"이라는 믿음을 우리가 함께
나눈다면 분배와 형평위주의 정책이 가져올 파괴적인 결과를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이번 정부는 명시적으로 성장의 엔진인 그룹체제의 해체라고 하지않고
수선이라고 한다.

하지만 필자는 수선이나 개선을 위한 행동이라는 확신이 서지 않는다.

여러가지 조치들이 객관적인 근거나 이론적인 토대 없이 신념과 확신에
바탕을 두고 급속히 추진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들의 삶과 직결되는 문제일수록 여론에 떠밀려 혹은 자기확신에 찬
나머지 무리수를 두어서는 안된다.

차분히 쟁점사항 등을 따지는 노력들이 언론을 중심으로 이뤄져야 한다.

왜냐하면 정치권력이란 짧고 우리네 삶은 이 땅에서 계속될 것이기
때문이다.

과연 그룹체제는 더이상 시장에서 받아들일 수 없는 체제인가, 전문기업은
이상향인가, 사외이사를 50%까지 늘리는 일이 올바른가, 제2금융권에 대한
개혁조치들은 책임지지 않는 기관을 양산해 관치금융의 폐해를 더욱
악화시키지는 않을까 등 여러가지 의문이 떠오른다.

< www.gong.co.kr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8월 23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