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 대통령의 재벌개혁 구상이 8.15 경축사를 통해 실체를 드러냈다.

이어 정부의 신재벌 정책을 놓고 논란이 일고 있다.

IMF사태 이후 고개를 숙여온 재벌은 숨조차 죽이고 있다.

한국경제신문은 기업옹호론의 간판주자인 송병락 서울대 부총장과 정부
산업정책의 싱크탱크인 산업연구원의 이선 원장을 만나 재벌개혁의 현주소를
진단하고 바람직한 정책방향을 조명해 봤다.

노성태 한국경제신문 주필 사회로 열린 대담에서 이 원장은 "정부의
재벌정책은 대그룹의 체질을 개선해 21세기 초우량 기업으로 만들기 위한 것"
이라며 "재벌개혁이 결코 재벌해체를 의미하진 않는다"고 말했다.

송 교수는 "정부가 대기업의 단점만을 확대해 절벽으로 몰아넣고 있다"며
"기업과 경영인이 신바람 나게 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대담내용을 2회에 걸쳐 지상중계한다.

[ 대담자 :송병락 서울대 부총장, 이선 산업연구원장
사회자 :노성태 한국경제신문 주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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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성태 한국경제신문 주필 =김대중 대통령의 8.15 경축사 이후 정부의
재벌정책에 대한 추측이 분분하다.

신재벌정책의 실체는 무엇인가.


<>이선 산업연구원장 =정부의 이번 재벌개혁 구상은 재벌해체를 겨냥한 것은
아니다.

다만 총수가 지배하는 선단식 경영방식을 고치고 이사회 중심의 독립적인
경영을 뿌리내리도록 한다는 게 정부 방침이다.

앞으로도 재벌개혁은 시장기능과 제도적 틀을 최대한 존중하면서 제도적인
헛점을 보완하는 방향으로 추진될 것으로 본다.


<>송병락 서울대 부총장 ="재벌"은 정의가 없는 여론몰이식 용어다.

재벌에 대한 정부의 공식적인 정의조차 없는 실정이다.

정부의 재벌개혁 구상이 혼선을 빚고 있는 단초다.

정부가 만들어 놓은 공정거래법엔 기업집단 대규모기업집단 계열회사
기업결합 등을 모두 인정하고 있다.

그러나 다른 한편에서 사실상 재벌해체를 염두에 두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앞뒤가 맞지 않는 대목이다.

정부는 먼저 재벌에 대한 공식적인 정의부터 내려야 한다.


<>노 주필 =정부의 신재벌정책이 나온 배경은.

<>이 원장 =재벌개혁은 현정부 출범이후 일관되게 추진돼온 과제다.

지난 1년 6개월 동안 경영투명성 제고 등 5대 합의사항에 따라 재벌정책이
진행됐다.

이 과정에서 돌출된 문제들을 추스리고 제도적으로 보완하기 위해 순환출자
억제 등 3대 원칙을 추가한 것이다.

올들어 경기회복 조짐이 보이면서 재벌의 구조조정 의지가 퇴색되고 있는
조짐이 곳곳에서 감지됐다.

여기에 삼성자동차와 대우그룹등 부실기업 문제가 불거지면서 김 대통령이
보다 강도높은 재벌개혁 의지를 표명한 것으로 본다.

여기엔 대기업 구조조정이 제대로 진전되지 않으면 경제가 또 다시 위기에
빠질 수 있다는 인식이 깔려 있다.

대우사태의 원만하고 조속한 해결을 촉구하고 추가적인 기업부실을 막기
위해선 단호한 개혁구상이 필요하다는 점은 누구나 공감하고 있다.

<>송 교수 =무엇보다 시장경제 체제에 대한 올바른 이해가 필요하다.

공산주의는 기업을 인정하지 않는다.

해체 대상이다.

사회주의는 기업에 공갈이나 협박을 가한다.

기업의 문제점만을 확대시키고 공론화해 처벌한다.

반면 자본주의 시장경제는 기업이 신바람나게 일하도록 만들고 상을 주는
체제다.

자본주의 시장경제는 기업의 장점을 부각시키고 단점을 덮어준다.

그래도 안덮히는 단점만을 고치려 한다.

그래야만 기업과 경영인이 신바람나게 일할 수 있다.

기업이야말로 시장경제를 이끌어 가는 견인차이기 때문이다.

기업의 기를 꺽는 것이 사회주의라면 살려주는 것이 자본주의 시장경제다.

그러나 현 정부는 기업의 장점보다 단점을 부각시킨다는 인상을 줄 때가
많다.

재벌의 일부 폐해를 일반화해 뭇매를 가하고 있다는 시각도 적지 않다.


<>노 주필 =국제경쟁력이란 관점에서 볼때 대기업은 어떤 방식으로 개편되는
게 바람직하다고 보는가.


<>송 교수 =선단식 경영은 서구와의 경제전쟁을 위해 일본이 채택한
전략이다.

한국도 마찬가지다.

일본기업은 선단식 경영의 세계 제1인자다.

미쓰이 물산의 무려 8백개가 넘는 자회사로 그룹을 형성하고 있다.

세계시장에서 미국 등 외부의 공격을 버텨내고 있는 원동력이다.

소니와 도요타자동차도 각각 1천1백여개와 3백여개 자회사를 거느리고 있다.

일본은 대기업 뒤에 중소기업, 중소기업 뒤에 소기업이 정렬해 선단을
만들어 경제전쟁에 나서고 있는 것이다.

한국기업의 현실을 알아둘 필요가 있다.

미국 마이크로소프트(MS)사의 주식 시가총액은 4천72억달러에 달한다.

제너럴 일렉트릭(GE)의 시가는 3천3백33억달러다.

반면 한국의 국민총생산(GNP)는 3천2백억달러, 전체기업의 주식시가 총액은
2천5백억달러에 불과하다.

MS 주식의 60%만 팔면 한국기업을 모두 살 수 있는 셈이다.

매출액을 봐도 그렇다.

미국 제네럴 모터스(GM)과 일본 도요타의 매출은 각각 1천6백13억달러와
9백97억달러에 이른다.

현대자동차의 매출은 72억달러에 불과하다.

이제 외국회사들은 일대일로 경쟁할 것을 당당하게 요구하고 있다.

그룹이 해체된 상태에서 한국 기업들이 거대한 외국 공룡기업과 어떻게
싸워낼지 걱정이다.

기업 두드리기만 하고 있을 때가 아니라는 얘기다.

한국기업이 국제무대에서 역량을 발휘했던 것도 알고 보면 그물망식
기업구조 덕택이다.


<>이 원장 =선단식 경영이 아니라도 법테두리 안에서 얼마든지 자회사를
거느릴 수 있다.

공정거래법의 요건에 맞춰 수십개 자회사도 만들 수 있다.

일본의 도시바는 업종 전문화가 돼있고 법 테두리 안에서 자회사를 거느리고
있다.

재벌을 해체하자는 게 정부 의도가 아니라는 점을 다시 한번 강조하고 싶다.

오히려 살리자는게 목표다.

개별 기업들이 경쟁력이 살아나고 건실한 재무상태로 투명하게 경영한다면
오히려 대기업이 더욱 충실한 간판스타 역할을 할 수 있다.

다만, 정부의 지주회사 설립요건이 너무 까다롭다는 재계의 불평이 나오는데
대해 정부와 기업이 발전적으로 논의할 필요는 있다고 생각한다.


<>노 주필 =외신이 한국 구조조정의 시험대라고까지 평가했던 대우문제에
대한 정부 구상을 나름대로 평가한다면.

<>송 교수 =일부 정책담당자는 대우그룹을 "빚쟁이 논리"로 풀려고 하는
인상을 준다.

대우를 쪼개 팔아서라도 빚을 받아내겠다는 단순한 발상을 하고 있는
듯하다.

무조건 공장을 정리해 파는 게 능사는 아니다.

국가산업 차원에서 볼 때 돌이킬 수 없는 과오를 범할 수도 있다.

대우를 해체한 뒤 다시 매출 60조원의 회사를 만들 때 들어가는 역비용을
생각해야 한다.

대우그룹 부채는 5백억달러로 추산되는데 대우를 몽땅 팔아도 5백억달러가
안나온다.

대우가 세계 경영을 하면서 형성한 글로벌 네트워크는 비교할 수 없는
가치를 지니고 있다.

지금은 세계화 시대다.

글로벌 네트워크화 없이 세계시장에서 경쟁할 순 없다.

대우그룹 문제는 기업차원이 아니라 한국산업의 경쟁력, 더 나아가 글로벌
시대의 국가경제시스템 발전 차원에서 풀어나가야 한다.


<>이 원장 =대우사태는 유동성 위기와 구조적 위기가 겹친 결과다.

정부는 4조원의 긴급지원과 만기여신 연장등의 처방으로 대우의 유동성
위기를 해소해 주고 있다.

그러나 자금지원으로 위기를 넘긴다고 해도 근본적인 구조개혁이 뒤따르지
않은 한 대우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

정부가 대우 채권단에 대해 협조융자를 하도록 종용하고 대우그룹 자체의
구조개혁을 요구하는 것도 이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재벌의 선단식 경영과 글로벌 네트워크는 별개 문제다.

선단경영의 문제점은 한 회사의 부실을 다른 쪽에서 메꾸는 내부 시스템에
있다.

건전한 기업도 그룹내 일부 기업의 부실때문에 흔들릴 수 있다.

대우사태도 순환출자와 상호지급보증등 선단식 경영의 병폐가 노출된
결과다.

기업 구조조정이나 경영 지배권과는 상관없이 대우가 지닌 막대한 브랜드
가치를 살려야 한다는 데엔 동의한다.

채권단이 대우 경영진과 잘 상의해 현명하게 해결할 것으로 본다.


<>노 주필 =대우 구조조정의 주도권을 놓고도 말들이 많은데.

<>송 교수 =채권단은 오로지 금융문제를 해결하는 차원에서 대우를 대하는
것 같다.

당연히 구조조정의 칼자루는 기업쪽에 돌려 주고 빚처리는 채권단과 기업에
맡긴 뒤 정부는 간섭을 최소화해야 한다.

빚을 받겠다고 기업을 없애면 한국의 산업기반은 그만큼 쇠락하고 말 것이란
우려가 나올만 하다.


<>이 원장 =김우중 회장의 과거 치적이나 명예에 대해선 충분히 존중해야
한다.

현 대우문제의 해결방안을 가장 잘 알고 풀어갈 수 있는 사람은 김 회장을
포함한 현 경영진이라고 본다.

현 경영진과 채권단은 대립이 아닌 협력의 자세에서 문제를 풀어야 한다.

그러나 구조조정의 주도권은 문제의 당사자가 아닌 채권단이나 정부가
가져야 한다.

채권단이 주도권을 쥐는 게 타당하지만 적절한 범위안에서 정부가 개입하지
않을 수도 없는 상태다.

채권단의 도덕적 해이 가능성이나 대우사태 여파로 금융시장 혼란을 막는
것은 정부 몫이기 때문이다.


<>노 주필 =김 대통령은 8.15축사에서 산업자본의 금융지배를 막겠다고
선언했다.

이를 어떻게 평가하나.


<>이 원장 =과거에 기업은 금융지배가 필요했다.

외형 위주의 성장을 하다보니 돈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기업이 금융을 독식하면서 금리가 높아졌다.

고금리는 중소기업과 국민들의 고통으로 이어졌다.

최근엔 대기업이 회사채 시장이나 제2금융권을 독식하면서 금융자본에 대한
산업자본의 지배가 심각한 수위에 달했다.

이제 기업경영의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다.

기업은 외형이 아니라 수익으로 평가받는 시대다.

이 경우 기업 스스로 금융권에 대한 지배욕구는 자연스럽게 사라질 것이다.


<>송 교수 =이해가 안간다.

한국은 90년대 초반부터 금융전업군을 만든다고 하다가 실패하고 말았다.

금융은 21세기 최고의 성장산업이다.

세계수준의 금융기관이 없는 상태에서 한국이 선진국이 되리라고 기대하긴
어렵다.

금융도 다른 기업과 마찬가지고 국제경쟁력을 시급히 키워야 한다.

은행이나 금융산업이 세계적인 수준으로 발전하지 않으며 기업이나
국가경쟁력 발전도 어렵기 때문이다.

외국과의 경제전쟁 시대에 누가 소유하느냐는 것은 문제가 덜된다.

은행은 재벌의 사금고화되면 안된다는 얘기는 타당치 않다.

물건이 가면 돈이 오는 게 거래다.

기업그룹의 규모가 커지면 거기에 걸맞은 금융이 필요하기 마련이다.

일본의 경우 기업그룹들은 세계적인 은행을 소유하고 있다.

기업의 금융지배를 막는다는 건 시대에 역행하는 조치다.

< 정리= 유병연 기자 yooby@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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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병락 서울대 부총장 약력 ]

<> 39년생
<> 서울대 경제학과
<> 미국 서던캘리포니아대 경제학 박사
<> 한국개발연구원(KDI) 산업정책실장
<>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 서울대 부총장(현)
<> 에너지경제연구원이사장(현)

[ 이선 KIET 원장 약력 ]

<> 47년생
<> 서울대 경영학과
<> 미국 코넬대 경제학 박사
<>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위원
<> 경희대 경제학과 교수
<> 중경회 회장
<> 산업연구원(KIET) 원장(현)
<> 제2건국 범국민추진위원회 위원(현)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8월 23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