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채권을 발행해 공적자금으로 금융기관의 부실채권을 정리해 줘야
한다"

정운찬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21일 아주대학교 이동헌 석좌교수의 업적을
기리는 학술제에 참석, 이같이 주장했다.

그는 "권한이 없는 곳에 책임을 물을 수 없는 법"이라며 "과거 정부가
은행을 재정정책의 집행수단으로 삼았기 때문에 부실채권에 대한 책임으로
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고 지적했다.

정 교수는 또 재벌개혁 방향이 중구난방식으로 제시되면서도 정작 책임지는
사람이 없다는 여론이 확산되는 상황에서 재벌개혁을 주도할 태스크포스
(taskforce,특별팀)의 구성을 주장해 눈길을 끌었다.

정 교수의 발표논문을 요약하고 토론내용을 소개한다.

<> 금융개혁 =얽힌 실타래를 푸는 출발점은 금융기능의 정상화에 있다.

부실채권의 조속한 정리는 금융기능 정상화의 전제조건이다.

금융기관이 외국자본을 유치하는데는 한계가 있다.

정부가 채권을 발행해 해결하는 수밖에 없다.

공적자금의 크기를 명확히 하고 공평한 수준에서 국민부담을 결정해야 한다.

금융기관의 모럴해저드를 우려할 수도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부실채권은 정책금융의 산물이다.

권한을 주지 않았으면서 책임을 물을 수 있나.

정부가 전면에 나서는 것 외에 현실적인 대안이 없다.

<> 재벌개혁 =한국경제의 구조조적인 결함의 뿌리는 재벌에 의한 과잉투자
다.

과거 재벌개혁을 요구하는 주장은 평등주의적 입장에 서 있었다.

그러나 현재의 재벌시스템은 효율성 측면에서도 정당성을 상실했다.

삼성과 현대가 아니라 삼성중공업과 현대중공업이 경쟁해야 한다.

개별기업에게 공정한 게임의 룰이 적용돼야 한다.

재벌계열사간의 금융적 연결고리(상호출자 상호지급보증 등)를 끊는 것이
시급하다.

재벌의 조직적 반발을 이겨낼 태스크포스를 구성하라.

비전과 추진력을 갖추고 재벌과 금융기관의 영향력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인물이 그 팀을 이끌어야 한다.

소신을 갖고 일할 수 있도록 필요하다면 특별법을 제정해 면책특권도
부여해야 한다.

재벌개혁에는 채찍과 당근 모두가 필요하다.

그러나 지금은 채찍이 더 효과적일 때다.

<> 실업비용 축소 =IMF(국제통화기금)의 정책권고에는 중.단기적인 실업
문제와 소득분배 왜곡에 관한 대책이 없었다.

실업대책 및 사회복지 프로그램이 전무하다시피한 한국의 실정에서는
정부의 적극적인 관여가 필수다.

우선 사회간접자본에 대한 투자를 늘려야 한다.

유효수요를 늘리고 일자리를 창출하기 위한 것이다.

그리고 기업과 근로자 사이의 분쟁에 대해 정부가 공정한 심판이 돼야 한다.

해고와 강제사직을 무조건 허용하는 것은 진정한 노동시장의 유연화가
아니다.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근거틀이 마련된 상태에서 엄격한 심판이 존재할 때
비로소 가능하다.

<> 정부의 역할 =논의만 많고 되는 일은 없다.

개혁이 수렁에 빠지게 된 것은 그에 따른 정치.사회적 비용을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개혁이 비용을 수반한다는 사실을 외면하지 말라.

국민과 언론이 재벌개혁에 동의하고 있다.

또 재벌개혁이 공평성과 효율성을 동시에 제고시킬 수 있는 시점이다.

헌법 119조는 국난에 직면, 국가가 경제활동에 직접 개입하는 것을 허용
하고 있다.

정부는 헌법적 책임을 다해야 한다.

<> 토론내용 =이어진 토론회에서 시카고대학 젤러 교수는 "독과점과 관련된
공정거래법을 정비하는 등 제도적 개혁에 역점을 두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소비자단체와 노동자단체의 역할도 강화해 구조개혁을 감시해야 한다"
고 말했다.

정창영 연세대 교수도 "재벌체제를 잉태한 제도를 손보지 않고 인위적으로
구조개혁을 몰아붙여서는 위험하다"고 말했다.

1백여명의 국내외 경제학자가 참석한 이번 학술제는 이동헌 아주대학교
석좌교수가 "주택내구재를 포함한 실질생활물가지수의 개발"이라는 논문을
발표하는 등 총 16편의 경제학 논문이 발표됐다.

< 박민하 기자 hahaha@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8월 23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