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오늘 하루도 무사하기를... .. 하성란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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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 광장이 온통 붉은 색이다.
자동차들이 빠지고 난 주차장이나 아이들이 잠깐 자리를 비워둔 놀이터마다
어김없이 붉은 고추가 널려 있다.
평평한 지붕을 한 2층 양옥도 마찬가지다.
고추의 붉은 빛 때문에 눈이 맵다.
해마다 이맘때 쯤이면 늘 보던 모습이다.
고추를 사다 볕에 말리고 씨를 빼서 가루로 빻아 내년 이맘때가 될 때까지
김치를 담그고 여러 음식들의 양념으로 쓰기 위해 하는 준비이다.
야채 가게의 털보 아저씨는 붉은 고추가 가득 든 상자를 손수레에 담고
이리저리 배달하느라 비지땀을 흘린다.
하루종일 열심히 일하고 돌아온 사람들이 해질 무렵 아파트 광장 한쪽에
모여 삼겹살을 굽고 술잔을 돌린다.
살림을 아껴 내년에는 에어컨 한 대를 마련하는 것이 주부들의 꿈인 그런
곳이다.
붉은 고추가 잘 말라가고 있는 지금, 평화스럽고 행복한 오후다.
어머니는 아직도 점심때면 딸에게 전화를 건다.
결혼하고 시작된 일이니 벌써 6년이 다 됐다.
가끔 전화하지 않는 날은 결혼식이 있다든가 아니면 나에게 서운한 일이
있어 부러 그런 것이다.
어머니의 전화는 늘 밥 먹었니로 시작돼 음식 조심, 차 조심하고 아이
단속 잘 하라는 것으로 끝난다.
여섯살인 딸아이에게 동전을 쥐어주고 슈퍼마켓까지 혼자 갔다오라고 했다는
걸, 아이가 의기양양하게 한손에 얼음과자를 들고 집에 돌아왔다는 걸 말하면
어머니는 무척 걱정할 것이다.
어머니의 표현에 의하면 문밖이 바로 정글이다.
나는 초등학교 1학년때 처음으로 혼자 기차여행을 했다.
물론 영등포역에서 어머니가 기차를 태워주었고 목적지인 대천역에는 이모가
나와 있기로 돼 있었다.
완행 열차는 다섯시간이 넘어서야 나를 대천역에 내려놓았다.
처음으로 어머니 품을 떠났지만 조금도 무섭지 않았다.
같은 기차를 탔던 아주머니와 아저씨들은 나를 친딸처럼 보살펴주었고
과자를 사주기도 했다.
그 경험 이후로 나는 곧잘 혼자서 친척집을 방문했다.
그것은 나에게 소중한 추억이 되었다.
나도 내 딸아이에게 그런 추억을 갖게 해주고 싶지만 언감생심 엄두도
낼 수 없다.
골목길로 난폭한 차들이 질주한다.
그렇다고 놀이터도 더 이상 안전한 곳은 아니다.
언제 어디서 위험에 노출될 지 모른다.
모든 걸 운에 맡길 수는 없는 일이다.
몇해전 스포츠신문의 해외 토픽란에서 "억세게 운좋은 사나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읽은 적이 있다.
벼락을 맞고도 살아날 확률은 60만분의1, 비행기 추락사고 후 멀쩡히
걸어나올 확률은 2만7천분의1, 슬롯머신에서 잭팟이 터질 확률은 8백89분의1,
단 한장의 복권으로 복금 25만달러에 당첨될 확률은 5백20만분의1.
이 모든 행운을 거머쥔 사나이는 진공청소기 판매원이던 어느 미국인이었다.
토픽이라는 것이 사실과 재미를 교묘하게 배합한 것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그냥 웃고 말았다.
하지만 요즘은 "억세게 운좋은 사나이"의 이야기가 새삼 떠올라 지워지지
않는다.
얼마 전부터 나에게 버릇 하나가 생겼다.
모든 일에 한 번쯤 발을 걸어보는 것이다.
새로 산 선풍기가 회전할 때마다 기묘한 소리를 내고 어머니께 선물하기
위해 구입한 식기건조기 안에 수저통이 빠져 있고 큰맘 먹고 들른 한정식 집
에서 계산을 다하고 난 후에 빠진 음식들이 있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면
이 버릇이 이해가 갈 것이다.
한두번이 아니다.
실수로 유통된 불량품들이 모두 내게로 오고 있다는 느낌이다.
하지만 이런 것은 아주 사소한 것이다.
나는 백화점이 붕괴될 때 집에 있었고 다리가 끊어질 때는 다른 다리를
건너고 있었다.
그리고 내 아이는 아무 탈없이 유치원 캠프에서 돌아와주었다.
그러니 사소한 것에 불평을 할 처지가 아니다.
씨랜드 사고로 아이를 잃은 국가대표 필드하키 선수였던 엄마가 나라로부터
받은 훈장들을 반납하고 이제 곧 이 나라를 떠날 예정이란다.
지울 수 없는 상처를 받고 그 상처마저 보듬어주지 못하는 이 나라에
배신감을 느꼈다고 한다.
하지만 아직도 도처에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부실공사 건물들이 수없이 많고 기둥이 물위에 떠있는 다리도 여럿이다.
하루하루가 줄을 타는 것처럼 아슬아슬할 뿐이다.
잠을 자기 전 나는 "오늘 하루도 아무 탈없이 보내게 해줘 고맙다"고
기도한다.
아파트 광장이 온통 붉은 색이다.
사람들이 바라는 행복은 큰 게 아니다.
가족들이 모여 오순도순 살아가는 것이다.
이렇게 운에 의지해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것이라면 내일 먹을 고추를 널
수도 없다.
우리가 바라는 것은 아무 의심없이 볕좋은 광장 가득 붉은 고추를 너는
것이다.
< 99 동인문학상 수상작가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8월 21일자 ).
자동차들이 빠지고 난 주차장이나 아이들이 잠깐 자리를 비워둔 놀이터마다
어김없이 붉은 고추가 널려 있다.
평평한 지붕을 한 2층 양옥도 마찬가지다.
고추의 붉은 빛 때문에 눈이 맵다.
해마다 이맘때 쯤이면 늘 보던 모습이다.
고추를 사다 볕에 말리고 씨를 빼서 가루로 빻아 내년 이맘때가 될 때까지
김치를 담그고 여러 음식들의 양념으로 쓰기 위해 하는 준비이다.
야채 가게의 털보 아저씨는 붉은 고추가 가득 든 상자를 손수레에 담고
이리저리 배달하느라 비지땀을 흘린다.
하루종일 열심히 일하고 돌아온 사람들이 해질 무렵 아파트 광장 한쪽에
모여 삼겹살을 굽고 술잔을 돌린다.
살림을 아껴 내년에는 에어컨 한 대를 마련하는 것이 주부들의 꿈인 그런
곳이다.
붉은 고추가 잘 말라가고 있는 지금, 평화스럽고 행복한 오후다.
어머니는 아직도 점심때면 딸에게 전화를 건다.
결혼하고 시작된 일이니 벌써 6년이 다 됐다.
가끔 전화하지 않는 날은 결혼식이 있다든가 아니면 나에게 서운한 일이
있어 부러 그런 것이다.
어머니의 전화는 늘 밥 먹었니로 시작돼 음식 조심, 차 조심하고 아이
단속 잘 하라는 것으로 끝난다.
여섯살인 딸아이에게 동전을 쥐어주고 슈퍼마켓까지 혼자 갔다오라고 했다는
걸, 아이가 의기양양하게 한손에 얼음과자를 들고 집에 돌아왔다는 걸 말하면
어머니는 무척 걱정할 것이다.
어머니의 표현에 의하면 문밖이 바로 정글이다.
나는 초등학교 1학년때 처음으로 혼자 기차여행을 했다.
물론 영등포역에서 어머니가 기차를 태워주었고 목적지인 대천역에는 이모가
나와 있기로 돼 있었다.
완행 열차는 다섯시간이 넘어서야 나를 대천역에 내려놓았다.
처음으로 어머니 품을 떠났지만 조금도 무섭지 않았다.
같은 기차를 탔던 아주머니와 아저씨들은 나를 친딸처럼 보살펴주었고
과자를 사주기도 했다.
그 경험 이후로 나는 곧잘 혼자서 친척집을 방문했다.
그것은 나에게 소중한 추억이 되었다.
나도 내 딸아이에게 그런 추억을 갖게 해주고 싶지만 언감생심 엄두도
낼 수 없다.
골목길로 난폭한 차들이 질주한다.
그렇다고 놀이터도 더 이상 안전한 곳은 아니다.
언제 어디서 위험에 노출될 지 모른다.
모든 걸 운에 맡길 수는 없는 일이다.
몇해전 스포츠신문의 해외 토픽란에서 "억세게 운좋은 사나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읽은 적이 있다.
벼락을 맞고도 살아날 확률은 60만분의1, 비행기 추락사고 후 멀쩡히
걸어나올 확률은 2만7천분의1, 슬롯머신에서 잭팟이 터질 확률은 8백89분의1,
단 한장의 복권으로 복금 25만달러에 당첨될 확률은 5백20만분의1.
이 모든 행운을 거머쥔 사나이는 진공청소기 판매원이던 어느 미국인이었다.
토픽이라는 것이 사실과 재미를 교묘하게 배합한 것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그냥 웃고 말았다.
하지만 요즘은 "억세게 운좋은 사나이"의 이야기가 새삼 떠올라 지워지지
않는다.
얼마 전부터 나에게 버릇 하나가 생겼다.
모든 일에 한 번쯤 발을 걸어보는 것이다.
새로 산 선풍기가 회전할 때마다 기묘한 소리를 내고 어머니께 선물하기
위해 구입한 식기건조기 안에 수저통이 빠져 있고 큰맘 먹고 들른 한정식 집
에서 계산을 다하고 난 후에 빠진 음식들이 있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면
이 버릇이 이해가 갈 것이다.
한두번이 아니다.
실수로 유통된 불량품들이 모두 내게로 오고 있다는 느낌이다.
하지만 이런 것은 아주 사소한 것이다.
나는 백화점이 붕괴될 때 집에 있었고 다리가 끊어질 때는 다른 다리를
건너고 있었다.
그리고 내 아이는 아무 탈없이 유치원 캠프에서 돌아와주었다.
그러니 사소한 것에 불평을 할 처지가 아니다.
씨랜드 사고로 아이를 잃은 국가대표 필드하키 선수였던 엄마가 나라로부터
받은 훈장들을 반납하고 이제 곧 이 나라를 떠날 예정이란다.
지울 수 없는 상처를 받고 그 상처마저 보듬어주지 못하는 이 나라에
배신감을 느꼈다고 한다.
하지만 아직도 도처에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부실공사 건물들이 수없이 많고 기둥이 물위에 떠있는 다리도 여럿이다.
하루하루가 줄을 타는 것처럼 아슬아슬할 뿐이다.
잠을 자기 전 나는 "오늘 하루도 아무 탈없이 보내게 해줘 고맙다"고
기도한다.
아파트 광장이 온통 붉은 색이다.
사람들이 바라는 행복은 큰 게 아니다.
가족들이 모여 오순도순 살아가는 것이다.
이렇게 운에 의지해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것이라면 내일 먹을 고추를 널
수도 없다.
우리가 바라는 것은 아무 의심없이 볕좋은 광장 가득 붉은 고추를 너는
것이다.
< 99 동인문학상 수상작가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8월 21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