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영분 < 방송 작가 >

내게 20번째홀이 생겼다.

흔히 라운드후의 뒤풀이를 19번홀이라하는데 그 19홀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도 뭔가 성이 차지 않을때 난 20번째홀에 들른다.

또 연습장에서 드라이버가 안맞아 씩씩거리고 들어온 날도, 한밤중에
골프생각이 날때도 어김없이 20번홀을 찾아든다.

그 20번홀은 다름아닌 "PC통신 골프동호회"다.

골프광들의 모임, 아니 골프를 신봉하는 사람들의 모임.

서핑이니 야구니 여러 동호회가 있지만 골프동호회만큼 20대부터 60대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한 연령층을 갖춘 곳이 또 있을까.

피끓는 20대가 그날 샷이 안됐다며 방방 뜨면 30대는 선참으로서 "그럴때는
이렇게"의 방법을 제시한다.

이를 지켜보던 40, 50대 고수, 허허 웃으며 "맘 다스리는 법" 한수를
일러준다.

그날 무너진 플레이부터 골프때문에 구박받는 남편들의 비애에 이르기까지
숱한 의견들이 있지만 최근 조회건수가 단박에 2백여회에 달한 통신이 있다.

바로 "남보다 드라이버 50야드 더 날리는 법".

누가 그 의견을 읽지 않겠는가.

비법인즉 "턱수염 깎고 화장한후 부인의 스커트 빌려 입고 레이디 티에
오르면 되는 것".

그런 얘기가 있는가 하면 해탈의 경지 글도 있다.

다이백파, 열이달구십 금이달팔십, 공이달싱글 귀우지자, 달언더파 많이
나가면 파1백을 하고, 열올려 연습하면 90대에 이르고, 돈좀 들여야 80대,
그리고 맘을 비워야 싱글을 친다.

또 골프귀신하고 친구인 자만이 언더파에 이른다는, 즉 죽어서야 언더파를
친다는 어느 도인의 논리도 있다.

난 이 20번홀에서 "상대방 무너뜨리는 법"도 배우고 "본인 사망시를
제외하고는 꼭 지켜야 하는 부킹의 절대성"도 알게 됐다.

"어느날 갑자기 고수가 하수되고, 하수가 고수될수 있음"을 들었고
"30년을 당하고도 절대 이기지 못하는게 골프임"을 배웠다.

얼굴도 보지 못한 사람들의 얘기에 고개를 끄덕이고, 하루종일 골프치다
돌아와 그것도 모자라 새벽까지 컴퓨터를 두들기게 하다니...

이만하면 골프는 "신내린 스포츠, 24시 스포츠"임에 틀림없는것 같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8월 20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