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깊이읽기) '카드모스와 하르모니아의 결혼'
-
기사 스크랩
-
공유
-
댓글
-
클린뷰
-
프린트
신화는 모든 서사의 어머니다.
신화는 역사를 낳고 시와 이야기를 만들고 예술과 철학을 키웠다.
인류문화의 가장 풍부한 자양분도 신화였다.
그런데 이 모든 것은 어떻게 시작되었는가.
신화학자들은 그동안 올림포스 신들의 계보를 정리하고 앞뒤가 맞지 않는
영웅들의 무용담을 재배치하려고 무던히 애를 썼다.
하지만 헬레네 이야기만 해도 "백조의 알에서 태어났다"거나 "레다와
백조로 변한 제우스 사이의 사생아였다" "제우스의 네메시스 겁탈로 생긴
아이였다"라는 식으로 끝없이 갈라진다.
왜 그럴까.
"카드모스와 하르모니아의 결혼"(동연, 1만5천원)을 쓴 로베르토 칼라소의
표현을 빌리면 "당신이 움켜쥐는 순간, 수천 갈래의 부챗살처럼 사방으로
흩어져 버리는 것"이 신화이기 때문이다.
칼라소는 이 책에서 신화의 변용을 자유자재로 보여준다.
로마 시인 오비디우스의 신화가 "변신"에 초점을 맞췄다면 그의 신화는
신과 인간의 "욕망"에 렌즈를 맞춘다.
벌빈치의 청교도식 신화가 갖는 한계도 뛰어넘는다.
기독교인들에 의해 섹스 등 불경스런 내용이 삭제된 번역본들과는 처음부터
궤를 달리 한다.
세계의 기원에 대해서도 그의 접근방식은 색다르다.
그동안의 신화는 혼돈으로부터의 지구탄생 등 창조신화로부터 시작됐지만
그는 신과 인간, 특히 여성과의 교섭에 관심을 집중시킨다.
그에게 신은 고대인들이 수백년간 믿어온 것처럼 "무자비한 정의의 집행자"
가 아니라 단지 "힘센 인간"일 뿐이다.
그는 기독교 식의 도덕적 교훈을 강요하지도 않는다.
이 책이 "20세기 관점에서 새롭게 쓴 그리스 신화"로 불리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 책은 하나의 신화가 얼마나 다양한 함의를 지니고 있으며 시대상황에
따라 어떻게 변주되는지를 확인시켜준다.
이야기를 끌어가기 위해 "그런데 이 모든 것은 어떻게 시작되었는가"라는
질문을 반복적으로 던진다.
저자는 대지의 여신 가이아가 신들을 낳기 이전의 시간으로 우리를 이끈
다음 영웅시대의 종언을 고하는 오디세우스의 죽음, 신들과 인간이 연회자리
를 함께 한 마지막 사건 "카드모스와 하르모니아의 결혼"얘기를 차례로
들려준다.
현대의 모든 예술과 지식기반이 이같은 "자의식의 발견"으로부터 비롯됐다는
것을 깨닫고 나면 왜 신화가 그토록 오랜 세월 부챗살처럼 갈라져
내려왔는지도 눈치채게 된다.
< 고두현 기자 kdh@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8월 19일자 ).
신화는 역사를 낳고 시와 이야기를 만들고 예술과 철학을 키웠다.
인류문화의 가장 풍부한 자양분도 신화였다.
그런데 이 모든 것은 어떻게 시작되었는가.
신화학자들은 그동안 올림포스 신들의 계보를 정리하고 앞뒤가 맞지 않는
영웅들의 무용담을 재배치하려고 무던히 애를 썼다.
하지만 헬레네 이야기만 해도 "백조의 알에서 태어났다"거나 "레다와
백조로 변한 제우스 사이의 사생아였다" "제우스의 네메시스 겁탈로 생긴
아이였다"라는 식으로 끝없이 갈라진다.
왜 그럴까.
"카드모스와 하르모니아의 결혼"(동연, 1만5천원)을 쓴 로베르토 칼라소의
표현을 빌리면 "당신이 움켜쥐는 순간, 수천 갈래의 부챗살처럼 사방으로
흩어져 버리는 것"이 신화이기 때문이다.
칼라소는 이 책에서 신화의 변용을 자유자재로 보여준다.
로마 시인 오비디우스의 신화가 "변신"에 초점을 맞췄다면 그의 신화는
신과 인간의 "욕망"에 렌즈를 맞춘다.
벌빈치의 청교도식 신화가 갖는 한계도 뛰어넘는다.
기독교인들에 의해 섹스 등 불경스런 내용이 삭제된 번역본들과는 처음부터
궤를 달리 한다.
세계의 기원에 대해서도 그의 접근방식은 색다르다.
그동안의 신화는 혼돈으로부터의 지구탄생 등 창조신화로부터 시작됐지만
그는 신과 인간, 특히 여성과의 교섭에 관심을 집중시킨다.
그에게 신은 고대인들이 수백년간 믿어온 것처럼 "무자비한 정의의 집행자"
가 아니라 단지 "힘센 인간"일 뿐이다.
그는 기독교 식의 도덕적 교훈을 강요하지도 않는다.
이 책이 "20세기 관점에서 새롭게 쓴 그리스 신화"로 불리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 책은 하나의 신화가 얼마나 다양한 함의를 지니고 있으며 시대상황에
따라 어떻게 변주되는지를 확인시켜준다.
이야기를 끌어가기 위해 "그런데 이 모든 것은 어떻게 시작되었는가"라는
질문을 반복적으로 던진다.
저자는 대지의 여신 가이아가 신들을 낳기 이전의 시간으로 우리를 이끈
다음 영웅시대의 종언을 고하는 오디세우스의 죽음, 신들과 인간이 연회자리
를 함께 한 마지막 사건 "카드모스와 하르모니아의 결혼"얘기를 차례로
들려준다.
현대의 모든 예술과 지식기반이 이같은 "자의식의 발견"으로부터 비롯됐다는
것을 깨닫고 나면 왜 신화가 그토록 오랜 세월 부챗살처럼 갈라져
내려왔는지도 눈치채게 된다.
< 고두현 기자 kdh@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8월 19일자 ).